새 해들어 집에 있는 컴퓨터가 말썽을 일으키더니 급기야 이달초에는 연거푸 에러가 계속 났다.
 
바이오스 설정이 잘못됐다며 오류메시지가 뜨더니 급기야는

마스터 드라이브(HDD)에  프로그램 충돌이 생겨 오류가 나고 말았던 것이다.

안전모드로도 부팅이 안되고, 명령프롬프트로도 부팅이 안되었다. 

아마도 프로그램상의 오류로 하드의 시스템파일이 에러가 났나보다.

자료를 살리고 싶은 마음과 포맷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복구 시디를 통해 복구를 해보려고 했지만

심각한 오류가 나서 복구가 불가능했다. 

문제는 그러기를 몇번 반복했더니 이제는 아예 컴퓨터가 부팅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혹 쇼트로 인한 고장인가? CPU상의 문제인지...

메인보드가 맛이 갔는지 갖가지 추측을 해 보았다.

데이터 복구를 위해서는 다른 컴퓨터에 연결해서 백업을 받아야 하는데, 

하필이면 설상가상이라고, 노트북마저도 말썽을 일으켜 액정을 새로 갈아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백업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쨌든 데이터를 살려보고자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부팅조차 않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지나친 점검으로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판단하여 

처음부터 배우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접근해보기로 했다. 

부팅이 되다가 아예 부팅조자 되지 않는 상황이 오자,

상황이 많이 심각할 거란 생각이 들어 심도깊은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모으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덤빈 첫날 저녁 혹 CPU에 문제가 있었는지 억지로 힘을 주다가 핀이 휘는 사고가 발생하고,

하드를 고정하지 않은채 작동시켜 하드의 물리적 에러가 났다고도 생각하고, 

램 소켓이 정확하지 않는 것 같아. 다시한번 확인하고, 

가장 빈번한 에러중 하나인 메인보드 콘덴서 부풀림을 진단하고, 별 짓을 다해 봤다. 


결론은 되었다, 안되었다...를 반복... 결국 컴퓨터 수리업체에 맡기려고 했다.

명색이 컴퓨터 쫌 한다면서 컴퓨터 수리업체의 도움을 빌린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상했고,

특별한 고장 없이도 점검만으로도 비용을 받는 그들의 행태가 못마땅하고 아까워

다시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먼저 메인보드 제조사와 CPU 제조사에 모델명을 묻고 필요한 정보들을 모았다.

컴퓨터를 조립한지 벌써 3년이 되어가는지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부품들도 거의 단종되어 A/S도 불가한 제품들이었다.

어쨌든 최후엔 램부터 CPU, 메인보드까지 고장나서

전부 새로 교체할 수 도 있다는 비장한 마음을 가지고 처음부터 다시 접근했다.  

아래는 CPU와 메인보드에 관한 기본적인 A/S정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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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U의 경우 A/S 처리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1. 보증기간(3년)이 경과된 제품은 유상으로 수리가 가능하나 거의 수리가 불가능하고 새로 구입해야 한다.

2. 보증가긴 내에 제품은 고객과실이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 새제품으로 교환해준다.

3. 혹 제품이 단종되었다면 최근에 나온 제품중 그 제품과 가장 가까운 모델로 교체해 준다.


 

메인보드의 경우

1. 메인보드를 떼어서 보급사에 보낸다.

2. 메인보드 보급사는 간단한 테스트를 거쳐 메인보드 불량을 판단하고, 간단한 고장은 바로 수리해서 보내준다.

3. 수리가격은 1만원~4, 5만원 정도

4. 수리가 불가능하고 보증기간(1년 무상, 2년 유상)이 남아있는 경우는 제조사에서 이전에 같은 모델중 고장난

보드를 미리 받아놓았다가 수리된 다른 제품으로 교환해주고, 고장난 보드는 제조사에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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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며칠간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실시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바이오스 설정값을 자꾸 물어보았던 며칠전 생각에

혹시 메인보드 약이 다 되었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며칠 뒤 마트에가서 건전지를 구입했더니 950원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메인보드 건전지를 갈아넣고 컴퓨터를 부팅시키니 예전의 에러메시지를 내며 부팅이 되었다.

어쨌든 부팅이 되었고, 몇번의 확인 후에 1차적으로 메인보드의 건전지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꼴랑 950원, 그것도 건전지 하나때문에 며칠간 이런 고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자

얼마나 허탈하고 한심하던지 절로 한탄섞인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작은 것에 집중하지 않고, 큰 것을 바라보고,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배제하고, 더 이상의 복잡한 고난이도의 기술을 생각했던

내 생각이 짧고 어리섞었음을 깊이 깨달았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가 전체를 망칠 수 있고,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꼴랑 950원짜리 건전지 때문에 몇 십만원의 비용을 그냥 날릴뻔 한 것이다.

작은 것의 힘이 이런것이 아닐까?

결과적으로 SATA 케이블을 하나더 구입해서 데이터를 백업받기로 결심하고, 이전에 구입해 놓았던

새로운 하드에 윈도우를 다시 깔고 드라이버를 다운받아 새롭게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프로그램들을 새로 깔고 백업받아야하는 번거로움들이 있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중요하다' 라는 값진 깨달음을 얻었다.

 

이와 같이 인생도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큰 것에 마음을 두고 그것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가장 작고 기본적인 것에 충실하지 않으면 큰 것을 이룰 수 없으며

작은 것에 소홀히 하면 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림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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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맞이하여 스포츠 전문채널 ESPN에서 본선에 진출한 32개국의 특징을 살려

각 나라별 포스터를 제작했습니다.

각 언론 매체는 각 나라별 특징을 매우 잘 표현하였다는 호평을 듣고 있습니다.

그럼 각 나라별 포스터를 알파벳 순으로 알아볼까요?

2010 남아공 월드컵 포스터

각국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피파컵을 차지하기 위해 남아공으로 달려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알제리>
86년 이후 24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오른 알제리는 
아프리카 C조 최종예선에서 최종 경기였던 이집트의 파상공세를 GK 가우아위와 철벽수비 4인방의 선방으로
 잘 막아내어 1:0으로 이집트를 이기고 본선에 진출하는 드라마를 펼쳤습니다    


<아르헨티나>
'제 2의 마라도나'로 불리며 메시아로 떠오른 '메시'의 발에 아르헨티나의 운명이 걸렸네요.
1978년, 86년의 2번의 우승에 빛나는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다짐하는 메시의 모습 뒤로
 아르헨티나 국기의 태양이 빛나고 있네요.


<호주>
히딩크에 이어 베어벡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호주는
차세대 주자 '팀 칼'이 캥거루 모습을 하고 한 방 먹일 태세를 보이고 있네요.
그래서 호주를 캥거루에 빛대어 '사커루'라고 부르나 봅니다.


<브라질>
말일 필요없는 세계축구의 맹주이자 월드컵 통산 5회 우승에 빛나는 브라질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즐비하고 '하얀 펠레'로 불리우는 축구 스타 '카카'를 앞세워
이번 대회에서 또 하나의 별(우승)을 깃발위에 새겨 놓으려 하네요. 


<카메룬>
1990년부터 세계 축구의 맹수로 떠오르며 큰 획을 그어왔던 아프리카 축구의 선두주자
 카메룬은 인터밀란에서 뛰고 있는 공격수 에투를 앞세워 아프리카 축구의
용맹함을 다시 한번 보이려고 하네요.


<칠레>
남미의 복병 칠레는 통산 8번째 월드컵에 진출한 나라입니다.
명장 비엘사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과 공격수 움베르토 수아소를 앞세워 화려한 공격축구를 구사하는 팀입니다.
허정무 감독이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함께 이번대회 우승후보로 꼽을만큼 주목할 팀 중 하나입니다.


<덴마크>
지난 2번의 대회를 아쉽게 놓치고  본선 무대를 밟은 덴마크는
모르텐 올센감독의 지휘아래 선수전원이 탄탄한 조직력을 앞세우는 나라입니다. 
영화 '오션스 일레븐'을 패러디한 '올센스 일레븐' 패러디 포스터가 재밌네요.


<잉글랜드>
'축구종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월드컵에서는 66년 단 한 차례의 우승경력만 있는 잉글랜드는
렘파드와 제라드, 루니를 앞세워 44년만의 우승을 노려보는데 그림만 봐서는 쉽지 않은 듯 합니다.


<프랑스>
이번 본선무대의 제2의 신의 손 사건을 만든 '앙리'에 의해 가까스로 본선에 진출한 프랑스
개선문 앞에서 프랑스 국기 색깔로 옷입은 앙리와 리베리, 시세 3총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네요


<독일>
월드컵 3회 우승, 유럽 선수권 3회 우승에 빛나는 토너먼트 경기의 최강자 '전차군단' 독일
독일 최고의 등번호인 13번을 단 주장 '발락'은 부상으로 이번대회에 출전이 어럽다네요
3회 우승을 상징하는 별과 날개에 달린 슈퍼스타들의 친숙한 이름들
(베켄 바우어, 마테우스, 뮐러, 클린스만 등)이 보이네요.


<가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무려 4차례나 우승했던 가나는
코트디부아르와 함께 아프리카 최강의 팀으로 불립니다
유소년 축구가 유독 강한 가나는 지난 독일대회서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네요
첼시에서 뛰고 있는 마이클 에시앙이 가나의 깃발을 들었는데 정작 부상으로 출전이 어려울듯...


<그리스>
우라나라와 1차전에 맞붙는 게카스로 대표되는 그리스는 범선으로 비유되었네요
'게카스'로 대표로 유로 2004 우승의 감격을 재현해 보이기에는 선수들이 너무나도 노쇄해 보이네요


<온두라스>
1982년 이후 28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오른 온두라스입니다
코스타리카와의 골득실에 앞서 가까스로 월드컵에 진출한 나라라는 것 말고는 잘 모르겠다.


<이탈리아>
월드컵을 로마 콜로세움에 비유해서 만든 포스터내요.
 각 국의 맹수들의 공격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GK 부폰, 피를로, 칸나바로를 앞세워 지난대회 우승컵을 지켜내고 있네요.


<코트 디부아르>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드로그바를 최전방 공격수로 앞세워 출전한 코트디부아르는
이번 월드컵 아프리카 진출국 6개팀 중 최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죽음의 조인 G조에서 투레 형제를 포함해 슈퍼스타들을 총출동해 아프리카 돌풍을 몰고올지 기대가 됩니다.


<일본>
사무라이로 표현되는 일본은 이번 대회 같은 조에 속한
네덜란드, 덴마크, 카메룬등의 강호를 상대로
일본도로 꽂아넣어 원정 첫승의 꿈을 키우려고 하고 있네요


<멕시코>
북중미의 대표적인 축구 강자인 멕시코는 월드컵 13회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근래에는 특별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지역예선에서도 성적이 부진하여 몇번이나 감독을 교체하고
아기레 감독의 지도로 본선에 진출한 나라입니다.
 


<네덜란드>
'토탈 사커', '오렌지 군단'으로 불리우는 네덜란드는 준우승만 2회로
언제나 우승후보로 꼽히는 전통의 강호입니다
엘리아와 로번, 판데르파르트, 스네이더르 4명의 슈퍼맨이 네덜란드의 우승을 위해 출격하고 있네요


<뉴질랜드>
28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뉴질랜드는 이번대회 최약체로 분류되는 팀입니다.
다행히 호주가 아시아축구연맹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그 덕에 오세아니아 리그에서 1위로 진출했네요
포스터엔 넬슨, 킬런, 패스턴이 주축 선수로 나오네요


<나이지리아>
우리아 같은 B조에 속한 '슈퍼 이글스'나이지리아는
공격수 이데예를 주축으로 가장 빠른 축구를 구사하는 팀중 하나입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감독을 교체하는 등 개개인의 수준은 뛰어나나
조직력이 맞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반드시 넘어야하는 팀입니다.


<북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꺽고 8강에 진출했던 저력이 있는 북한은
이번 월드컵에서 죽음의 조인 G조에 편성되어 있습니다.
공격수 정대세가 북한의 상징인 천리마를 타고 어디까지 떠오를지 한번 기대해 봐야 네요.


<파라과이>
월드컵 본선보다 더 치열하다는 남미 예선을 연속 4회 통과한 파라과이는 
공격수 발데스를 앞세워 한번도
올라가보지 못한 8강의 꿈을 이루어보려고 노력할 것 같네요


<포르투칼>
세계 최고의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대표되는 포르투칼은
자신감 넘치는 호날두 얼굴에서 보이듯이
마법같은 그의 발기술을 통해 모든 것을 결정짓겠다는 의지가 보여집니다



<세르비아>
오랜 내전으로 유고슬라비아로 시작해 세르비아-몬테네그로로 이어졌고,
이번엔 몬테네그로와 분리해 독자진출한 세르비아는
지기치를 앞세워 '하얀 독수리'의 옛 명성을 빛낼지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는 체코와의 분리이전에는
월드컵 2회 준우승과 8회 진출이라는 화려한 전적을 뽐내었지만, 
분리 후에는 처음으로 월드컵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Fw 세스타크가  'Fightig Jondas'(슬로베니아 축구협회 닉네임)을 외치고 있네요. 


<슬로베니아>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한 슬로베니아는
특급 공격수 노바코비치를 앞세워 설원의 곰(북유럽 강호)을 쓰러트린 기세로
이번 대회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불태우네요  


<남아프리카 공화국>
부부젤라로 대표되는 월드컵 개최국 남아공,
개최국 자동출전 룰에 따라 무혈입성한 남아공은 그들의 닉네임
'바파나 바파나'(아이들)처럼 흑.백의 절묘한 조화로 인종차별을 넘어선
월드컵의 이념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아시아 축구의 맹주로 용맹한 백호로 표현되었네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이번 대회 포스터 중 가장 마음에 듭니다.
백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7개의 창살에는 7회연속 월드컵에 진출한 년도가 새겨져 있으며,
4강을 이루었던 2002년 창살은 백호의 날카로운 발톱에
뜯어져 나가 버렸네요. 대한민국 파이팅!


<스페인>
브라질을 제치고 이번대회 우승후보 1순위로 지목받고 있는 '무적함대' 스페인
이번 유럽예선에서도 그 명성에 걸맞게 '토레스'를 앞세워 10게임 전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무관의 제왕이라는 오명을 벋기 위해서라도 이번 예선에서 우승후보로 꼽히는
성난 소들(독일, 이탈리아, 브라질)을 무찌르고
'라 퓨리아 로아(La Furia Roja)' - 정열의 깃발을 흔들수 있을지 관심있게 지켜봐야겠네요.


<스위스>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 독일인 감독 히츠펠트를 영입하고
스위스칼(일명 맥가이버 칼)을 내세워 스페인, 칠레, 온두라스를 대상으로 
한 칼 보여주려 하고 있네요. 


<우루과이>
2번의 줄리메컵을 수상한 바 있는 우루과이는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코스타리카와 플레이오프를 치루면서
가까스로 월드컵에 진출한 나라입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멕시코, 프랑스 등의 강호와 싸워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네요. 


<미국>
미국은 축구만큼은 4대 스포츠인 풋볼, 하키, 농구, 야구에 비해 그 열기가 시들한 편이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통산 9회 진출 및 연속 6회 진출, 
월드컵 전초전인 2009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에 빛나는 화려한 전적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도 미국은 성조기와 함께 잉글랜드등이 속해 있는 C조에서
 16강 진출이라는 험난한 파도를 헤쳐가야 겠지요.


이상 제 짧은 지식으로 본선에 진출한 32개국에 관한 포스터를 살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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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폰 바꾸기 전에 사용했던 일명 벤츠폰 E-470

한 2년 정도 사용했나?  

그냥 방치돼 있던 폰을 수리해 애들 장난감으로 사용하도록 하려고 뜯어봤다. 

 

 

내부는 여러 칩으로 구성된 메인보드와 버튼 패드 및 입력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네 




지금은 큐리텔을 사용하는데 왜 핸드폰하면 삼성, 삼성하는지 다른 것을 써보니 알 것 같다. 

험하게 사용해서 껍데기가 험해졌지만, 내부를 뜯어보니 공정 하나하나가 참 꼼꼼함을 느낄수 있었다.   

 



키패드는 앞면이 알미늄이고 뒷면은 일반 전화기 패트랑 다른 것이 없는 자석접점이었다.

그런데 패드 하나에도 모델명을 세겨넣어(E470) 부품수급이 원할하게 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E470이 폴더형이기 때문에 키패드를 열어보면 바로 액정이 보이게 된다.  

메인 보드의 칩 정렬 상태도 깔끔하고 미려했다. 



내친 김에 액정화면의 뒷 부분도 개복했는데,

 LCD패널이랑 스피커, 자체 건전지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원 위치로 하기 위해 각 패널들을 조합하는데  

손이 두꺼워 조립하기에 쉽지 않네 

 

 다시 조립해 놓으니 깨끗한 새 폰이 되었다.  

물론 아이들이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고쳐놓았다.  

익숙한 것에 금방 실증내는 아이들이 얼마나 가지고 놀지.... 

암튼 5,000원에 파는 것보단 아이들 장난감이 더 좋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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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랫만에 컴퓨터랑 또 씨름을 한 번 하게 되었다.

집에 컴퓨터가 갑자기 인터넷이 않된다고 해서, 점검을 했고, IP 주소를 찾지 못해

늘 하던 대로 이전 시점으로 복구를 눌렀는데, 그만 윈도우에 치명적 에러가 생겨서

윈도우가 시동이 않걸리는 것이었다.


결국 갖가지 방법으로 씨름했고, 복구에 실패했다.

인터넷에 있는 각종 자료들을 여기저기 찾아보고, 짧은 컴퓨터지식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얼마전부터 버벅대던 삼성 320G 하드디스크의 에러로 이어졌다.

슬레이브로 잡아보니, 데이터 자체가 읽어지지 않아 결국 포맷을 해야할 지경이다.

아마도 Bad Sator가 났나보다.



삼성 A/S센터에도 방문해야겠지만, 아마도 복구가 힘들면 제일 안타까운 가족사진이 다

날라가게 생길 판이다.

그간 가족 관련한 사진 및 동영상 자료를 다 옮겨놓아서 컴퓨터에 사진 자료가 제일 많은데

복구가 힘들면 그간 사진들을 분실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업무컴퓨터와 노트북에 조금 있지만, 그 때 그 때 타저장매체로 저장을 해 놓지 않은 관계로

백업이 않될 시에는 많은 자료를 놓치게 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크다.

일단은 센터에 맡겨봐야 할 듯 하다.

덕분에 원치 않는 가물가물한 컴퓨터 지식에 불을 지피는 결과를 낳았지만,

이제는 늙었는지 영 호기심이나 메리트는 없는 듯 하다.

아무튼 연속된 삽질 후에 인터넷이 되도록 잡아주고 하루를 마감하게 되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 항상 다가올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중요한 자료는 정기적으로 백업받을 것!)을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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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스탠포트 대학교 졸업식 연설문

 
이 연설문은 스티브잡스가 2005년 미국의 명문대학인 스탠포트 대학교의 졸업식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근대 최고의 연설문 중 하나로 평가될 만큼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짧지만 강렬한 그의 메시지에 수 많은 사람들이 감동과 도전을 받았다.

지금 그 감동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연설문 전문>>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세계 명문대로 꼽히는 대학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오늘 이 자리만큼 대학졸업식을 가까이서 목격한 적은 없습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오늘은 제 인생에서 일어났던 세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그뿐입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딱 세가지 이야기입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들려 드릴 첫 번째 이야기는 점 잇기에 관한 것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리드 칼리지 Reed College에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자퇴를 했으나

일년 반 정도 청강생활을 하면서 머물렀습니다.


So why did I drop out?

그렇다면 왜 제가 자퇴를 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이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 갑니다. 생모는 당시 대학원을 다니던 미혼모였는데,

저를 양자로 보낼 결심을 하셨죠.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어머니께서는 제가 대졸학력을 가진 부부에게 입양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 마자 변호사 부부가 입양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런데 제가 태어나기 직전에 이 부부는 여자 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은 한밤중에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셨죠.

"예정에 없던 사내 아이가 태어났는데 받으시겠습니까?"

양부모님의 대답은 "물론입니다." 였습니다.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데 저를 낳아주신 어머님은 나중에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입양동의서에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양부모님께서 저를 꼭 대학에 보내시겠다고 약속을 한 지

몇 달이 지나서야 친 어머님은 마음이 누그러지셨죠.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로부터 17년 후에 대학에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순진하게도 스탠포드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택했습니다.

일반 근로자였던 양부모님이 저축한 모든 돈이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6개월 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제가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대학 교육이

어떤 도움이 될 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그리고 저는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을 까먹고 있었죠.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자퇴를 결심했고,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당시에는 꽤 두려웠지만, 돌아 보면,

제가 인생에서 내린 최고의 결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자퇴를 하고 나니, 관심 없었던 필수과목 대신 듣고 싶었던 강의를 청강할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낭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기숙사에 방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네 집 거실에서 잠을 잤고,

콜라 빈 병을 모아 재활용센터에 갖다 주고 병당 5센트를 받아서 먹을 것을 샀고,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은 양질의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 십 킬로미터를 걸어

하레 크리슈나 the Hare Krishna 사원(역주: 힌두교 계열)의 일요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I loved it.

그곳에서 식사는 정말로 좋았습니다.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제 호기심과 직감으로 얻는 대부분의 경험은 이후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재산이 되었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예를 한가지 들어 보지요: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그 당시 리드 칼리지에서는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교정 곳곳의 포스터, 서랍의 레이블 마다 아름다운 서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자퇴를 했으니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서체 수업을 듣기로 작정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세리프와 산 세리프 서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자모의 결합에 따라서

자간을 달리 둠으로써 훌륭한 서체를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것은 아름다웠고, 역사적으로 유명했으며, 과학은 따라 갈 수 없는 섬세한 예술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매료되었죠.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이것이 내 인생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될 것인가 하는 한 가닥 희망 조차 없었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하지만 십 년 후,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의미가 와 닿았습니다.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매킨토시와 접목을 시켰을 때, 미려한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탄생했으니까요.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제가 만약에 그때 서체 수업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매킨토시는 다중 서체나 비례적으로 자간을 조정하는 글꼴을 가지지도 못했을 겁니다.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그리고 윈도우즈가 맥을 그대로 따라 했으니까,

매킨토시뿐만 아니라 그 어떤 퍼스널 컴퓨터도 비슷한 처지에 놓였겠죠.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자퇴를 하지 않았더라면, 서체 수업을 청강하지 않았을 테니,

퍼스널 컴퓨터는 오늘날과 같은 훌륭한 인쇄술을 가지지도 못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었을 때에는 이런 미래의 점들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돌아 보았을 때, 모든 게 분명히 보였습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다시 말씀 드리지만, 우리는 미래의 점들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과거의 점들만 이을 수 있는 거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이런 점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이어진다고 믿어야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운명), 그 무엇이건 간에 믿어야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제 인생관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대한 것입니다.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운 좋게도 저는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일찍 찾았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 나이 스무 살에 워즈 Woz와 같이 부모님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를 시작했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 안에 애플은 사천 명 이상의

직원을 가진 20억불 짜리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창사 이래 최고의 걸작품인 매킨토시를 전년도에 출시했고 그때 제 나이가 서른이었습니다.

 

And then I got fired.

그리고 저는 해고를 당했죠.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스스로 창업한 회사로부터 어떻게 해고를 당할 수 있느냐구요?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애플의 규모가 점점 커감에 따라 저와 함께 회사를 운영해 나갈 재능이

걸출하다고 생각한 사람을 영입했고, 한 해 정도는 잘 굴러 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러다가 회사의 장래에 관한 견해가 엇갈리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불화로 번졌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그런데 이때, 회사의 이사진들은 그 사람 편을 들었죠.

 

So at 30 I was out.

그래서 나이 서른에 쫓겨 났던 겁니다.

 

And very publicly out.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말입니다.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제 인생의 초점이 사라졌고, 그것은 크나큰 충격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몇 달 동안 무엇을 해야 좋을 지 앞이 깜깜했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제 쪽으로 오던 바톤을 놓친 것처럼 한 세대 전의 기업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빗 패커드(역주; 휴렛 패커드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역주; 인텔의 공동 창업자)를 만났고 볼쌍 사나운 제 실패에 대해 사과를 하려고 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아주 공공연한 실패작이라 차라리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을 칠까 하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그러나, 무엇인가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여전히 제가 하던 일을 사랑했습니다.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애플에서 있었던 사건은 그 사랑을 조금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축출당했지만, 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다짐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 당한 사건은 돌아 보면

제 인생에서 일어났던 최고의 사건으로 판명되었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성공이라는 무거움을 벗고, 확신은 전보다 줄었지만,

다시 처음 시작한다는 가벼움으로 임했습니다.

 

It freed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of my life.

해방된 기분을만끽하며 제 인생의 가장 창의적인 시기로접어 들게 되었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그로부터 5년간, NeXT, 그리고 Pixar를 창업했고, 제 아내가 될 멋진 여자와 사랑에 빠졌죠.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Toy Story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놀라운 반전으로 애플은 NeXT를 인수했고, 저는 애플로 돌아 왔고,

NeXT에 개발했던 기술은 현재 애플 르네상스의 핵심입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그리고 로렌스와 저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죠.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확신합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그것은 지독하게 입에 쓴 약이었지만, 그 환자는 그 약이 필요했나 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때로 삶은 당신의 머리를 벽돌로 칩니다.

 

Don't lose faith.

신념을 버리지 마세요.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제가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이유는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임을 이제 잘 알고 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듯이 일도 그런거죠.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자신이 하는 일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고,

진정한 만족을 얻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가 훌륭한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아직도 그것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 보세요.

 

Don't settle.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마세요.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가슴으로 알 수 있는 모든 일이 그렇듯, 일단 찾았으면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인지 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위대한 사랑처럼, 해를 거듭할 수록 점점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그러니, 그 일을 찾을 때까지 계속 탐색을 하십시오.

 

Don't settle.

현재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열 일곱 살 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마지막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옳은 길로 들어 설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이 말에 감명을 받은 저는 그로부터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이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요." 라는 대답이 계속 나온다면, 무엇인가를 변경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곧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야 말로

제가 인생의 중대 결정을 내릴 때 의지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왜냐하면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심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은 죽음의 면전에서 밑으로 가라 앉고,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은 잃어버릴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당신은 이미 벌거벗은 상태입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일년 전쯤에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30반에 CT 촬영을 했는데, 췌장에 종양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전 췌장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이 암은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며, 길어야 석 달에서 여섯 달이라고 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에 가서 주변을 정돈하라고 했는데, 환자들에게 죽을 채비를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것은 자식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하리라 생각했던 이야기를 불과 몇 달 안에 다 하라는 것입니다.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그것은 매사를 잘 마무리해서 가족들이 받을 충격을 가능한 한 줄이라는 뜻입니다.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그것은 작별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온종일을 보냈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날 저녁,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목구멍으로 통해서 위장을 거쳐 장까지 내시경을 넣고,

췌장에 바늘을 꽂아서 종양에서 세포를 채취했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현미경으로 조직세포를 본 결과 아주 드문 췌장암의 한 종류로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드러나 의사들이 눈물을 글썽거렸다고 당시 곁에 있던 아내가 말했습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그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때만큼 죽음의 문전에 가까이 가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다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 일을 겪고 나니, 죽음 자체가 유용할 수 있지만 순전히 지적인 개념이었던 시절보다

좀 더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하늘나라에 가고 싶은 사람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기를 원치는 않습니다.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하지만 죽음은 어느 누구나 도달하는 목적지입니다.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과도 같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지요.

 

It is Life's change agent.

죽음은 '삶'의 변화물질입니다.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옛 것을 치우고, 새것을 위한 공간을 만듭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 그 '새것'은 바로 여러분이지만, 언젠가 여러분도 '옛 것'이 되고, 치워지겠죠.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지나치게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면서 낭비를 해서는 안됩니다.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다른 이의 생각이 빚어낸 결과가 구속하는 삶, 즉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여러분 안의 목소리가 다른 이의 의견이 내는 소음에 익사 당하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And most important thing is to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 있게 당신의 가슴과 직감이 하는 말을 따르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이 두 가지는 어떤 식으로든 여러분이 진정 무엇이 되고자 하는 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그 이외의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입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렸을 때, '지구 백과'(The Whole Earth Catalog)라는

굉장한 책이 있었는데 우리 세대 바이블 중 하나였죠.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지금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맨로팍 Menlo Park에 살던

스튜엇 브랜드 Stewart Brand 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이 책에 자신만의 시적 영감을 불어 넣었죠.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1960년 후반이었는데 퍼스널 컴퓨터나 탁상 출판이 출현하기 전이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구글이 존재하기 35년 전에 있었던, 책으로 된 구글 같은 것이었죠.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엇과 그 팀은 전체 지구 목록의 몇 가지 증보판을 냈고, 수명을 다했을 무렵, 최종판을 출판했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1970년 중반이었고, 그때 저는 지금의 여러분 나이였습니다.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최종판 뒷 쪽 커버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모험심이 넘치는 청춘이라면 그 길에서 히치 하이킹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함께. 바보스러움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그것은 그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습니다. 늘 제 자신이 그러기를 소망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바보스러움과 함께.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이제 여러분은 새 출발을 위해 졸업을 하고, 저는 여러분께 똑같은 소망을 보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에 머물라 . 바보스러움에 머물라.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첨단 IT제품들로 만들어진 스티브잡스의 모자이크

  

스티브 잡스(Steve Jobs)
  - 1955.2.25.일생(54세), 미국 샌프란시스코
  - 부인과 4명의 자녀와 살고 있음.
  - 애플의 창업자, 최고경영자(CEO)
  - NeXT, PIXAR CEO 역임
  -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혁신제품으로 애플사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끌어올린 천재 기업가.
  - 2007,2009 포춘지 선정 최고의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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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블로그를 하다 보면 처음엔 모르다가 점차적으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환경들이 맘에 들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잘 꾸며놓은 남의 블로그를 다녀온 후 더 초라해보이는 내 블로그를 보면서 여러가지 유혹에 빠지게 된다. 대부분의 블로거들이 가장 손쉽게 하는 방법은 스킨을 바꾸는 것...스킨만 바꿔도 훨씬 산뜻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스킨을 바꾸어도 변하지 않는 기본 글꼴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블로그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글꼴들은 익숙한 것들이라 한계가 있다. 따라서 금방 식상해진다.

포털에서 제공하는 블로그들은 대부분 글꼴이 제한돼 있어 자신이 원하는 글꼴로 변경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불편을 없애기 위해 설치형 블로그들(티스토리, 이글루스 등)을 사용하지만 HTML이란 장벽때문에 쉽게 포기하는 편이다. 

나 또한 이런 블로그가 익숙치 않기 때문에 여러번의 착오를 거쳐 실습하고 있는 중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초보 블로거들이여 함께 내 블로그의 글꼴을 변경해 보자.
그럼 시작~!!


  블로그 글꼴 변경하기!!

1. 관리모드에서 HTML/CSS 편집창으로 들어간다.

먼저 블로그 관리모드로 들어가 스킨을 클릭한 후 HTML/CSS 편집창으로 들어간다.
(글꼴만 바꾸면 되기에 용어에 대한 복잡한 설명은 생략토록 한다.)

그럼 아래와 같이 skin.html과 style.css라는 두가지 편집창이 보일 것이다.




2. "Ctrl+F"를 쳐서 검색창을 불러온다.

    Ctrl + F: 키보드의 컨트롤키'Ctrl'버튼과 키보드의 더하기 '+' 버튼을 동시에 누르는 것)

Ctrl+F를 눌러 검색창을 띠운다음 기본글꼴(여기서는 기본글꼴이 '맑은 고딕')을 치면 아래 그림과 같이
일치하는 곳을 찾아서 표시해 줄것이다. 




3. 엔터키로 다음 검색결과를 찾은 뒤, 원하는 글꼴 이름으로 대체하도록 한다.

이 때 주의할 점은 폰트는 반드시 "한글"명과 파일명"영문"을 동시에 적어야 한다.

예를 들면 "돋움"이면 폰트명도 "Dotum", "고딕"이면 파일명도 "Gothic"이라고 쳐 줘야 한다.

아래 그림은 스타일시트(style.css)에서 찾은 맑은고딕이다.(옆에 영문으로 "Malgun Gothic"라고 적혀 있다.






4. 변경한 뒤 미리보기를 통해 사전검사를 한 뒤 저장을 한다.


초보자가 저지르는 실수를 최대한 막아주기 위해 제작진이 특별히 배려한 '미리보기'기능은 매우 편리하다.

혹이나 HTML을 잘못 수정하여 자료가 뒤엉키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미리보기 기능을 제공하고, 미리보기를

통해 이상이 없을 경우에는 저장하도록 하는 작은 배려도 해 놓았다.



간단한 위의 방법대로 따라해 보면 아래 그림처럼 자신이 원하는 글꼴로 변경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의외로 HTML을 모른다 하더라도 결코 어렵거나 힘들지 않다. 다만 몇번의 삽질이 있을 뿐이지만 블로그가

한단계 업그레드 되기 위해서는 이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이상 초보블로거의 글꼴 변경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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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로리로 블로그를 옮기고 몇가지 문제점이 생겼다.

티스토리로 처음부터 블로그를 시작한 사람들보다,
설치형 블로그의 장점때문에 옮긴 사람들이 더 많을 듯 하다.
나 또한 이전 블로그를 폐쇠하지 않고 한참(?) 옮기고 있는 과정에 있다.

옛날글, 다른 블로그에 올린 글을 옮겨오다보니 예기치 않은 몇가지 문제점이 발생됐다.

1. 붙여넣은 글의 정렬이 안 먹히는 문제
예들 들어 옮겨온 글들의 정렬방식을 좌측, 중앙, 우측으로 설정해 놓아도 붙여넣기 하고 나면
정렬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다.

2. 글자크기와 서체의 문제
(아마도 전체 속성에 충돌이 나서 그런듯 하다)
편집창에서 글자크기와 서체를 바꾸어도 화면에는 적용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편집창에서는 제대로 보여지는데... 여간 삽질이 아니다.
폰트도 마찬가지...



3. 이미지 삽입시 일일이 첨부를 다시해야 한다.
다른 블로그의 글과 사진을 드래그 후 붙여넣기 하면 잘 붙어지긴 하지만 이미지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미디어로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다시 말해 사진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말. 다른 싸이트들도 거의 마찬가지인듯...)

아무튼 제일 간편한 것은 글의 양식 그대로를 가져오면 좋은데, 이렇게 삽질을 해야하니 시간과 노력이 배로 들어가는 듯 하다. 어떤 글은 차라리 새로 치는 게 시간을 더 아낄 수 있어서 문제점을 풀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해야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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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집에 컴퓨터가 말썽이라 잠시 봐주려했다가
잊고있던 짜투리 상식에 대한 욕구가 또 불타올랐다.
예전에 PC를 조립하기 위해 왠만한 스팩들이랑 이름들은 줄줄 외우고 다녔는데,
3년전에 PC조립한 이후로는 특별한 관심과 시간을 두지 않았다.

요즘은 컴퓨터 부품의 모델 교환주기가 너무 짧아지고,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해
매일같이 공부하지 않으면 쏟아지는 정보들을 다 소화할 수 없는게 실정이다.


              < 현재 다나와에서 200만원대를 형성한 인텔의 코어2익스트림 요크필드 QX9770 >


3년전 써브 컴퓨터로 조립할 때만해도 저가형에는 인텔 셀러론이나 AMD 754 소켓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잠시 살펴보니 AMD에서 AM2+소켓을 넘어 DDR3지원하는 AM3까지 나왔다고 한다.
잠시 찾아보니 AMD는 차세대 개발도구로 FM 시리즈로 출발할 예정이란다.
(마치 라디오가 AM에서 FM으로의 획기적 전환을 했듯이...)
인텔의 경우도 코어2 쿼드를 넘어 미래에는 메모리 컨트롤러와 인텔의 퀵패스 인터커넥트와 통합한
소켓B로 발전한다니 과히 따로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 다나와 AMD cpu중에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는 코어2익스트림 요크필드 QX9770 >
 

신제품이나 요즘 주력제품으로 옮겨탈려고 하니, 나름 가격부담이 많많찮은듯하다.
다행히 하려고 하는 컴퓨터의 주용도가 그리 사양이 높은 듯 해 보이지는 않으니
임시방편으로 512메모리를 하나더 추가해 1024M로 만들어주고, 
그래픽카드를 업그레이드 해주고 싶으나 가격이 많많찬은 관계로 일단 불안정한 CPU부터
중고시장에서 구입해줘야겠다.

집에 돌아와서 잠시 컴터를 켜서 보니 그새 컴 전문가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음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필요에 의해서 지금 잠시 또 몇가지 정보들을 들추고 다녀야겠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면 더이상 이런
골치 아픈 일에는 관심 쏟을 여유는 없을듯하다. 
암튼 오랫만에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재미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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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옮겨타야겠다는 결심도 잠시...
엄청난(?)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한다는 부담감에 접근조차 막막하고...
불성실한 결과 하루 방문객수가 조촐하기 짝이 없다.(어짜피 남을 위한 블로깅은 아니었으니...쩝)

설치형 블로그!
이름도 낫선 블로그질을 시작하려고 하니 배워야할 것들이 한두개가 아니다.
다행이도 재밌는 것은 하나 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잠시 시간이 나서 블로그 강의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시작할 때 부터 블로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는 싸이트가 어딘지 잠시 찾아봤는데,
추천할 만한 싸이트는 2개 정도일듯 하다.(특별히 티스토리 초보자라면 더욱 그렇다.)

1. http://guide.tistory.com/ (티스토리 가이드 블로그)
2.
http://www.bloggertip.com (zet님의 블로거팁 닷컴)

1. 티스토리 가이드 블로그

사용자 삽입 이미지

티스토리 자체에서 블로그형태로 제작한 티스토리 설명서라고 보면 무난할듯.
티스토리 가입에서 개설하기, 홈메뉴부터 각종 팁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이 블로그형태로 잘 정리되어 있는 곳이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나중에야 알았지만 제트님의 블로그팁보다 자세한 정보들이 많이 있는 편이다. 아직은 글이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지만 트랙백을 이용한 파워유저들의 글들이 잘 접목되어 부수적인 설명도 가능할 듯 하다. 복잡하고 어려운 용어설명도 나름대로 잘 되어 있는 곳이니 이 곳을 마스터 한 후에 다른 포스트를 참조하도록 하자.

2. Zet님의 블로거팁 닷컴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재까지는 블로거팁닷컴에서 필요한 도움들을 받았다.
제트님의 블로그팁닷컴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를 시작할 때 유용한 도움을 많이 받는 곳이다.
나 또한 우연히 알게되어 자주 들어왔다. 나름 일목요연하게 분류된 항목들을 차근차근히 배워간다면
뛰어난(?)블로거가 될 수 있을 듯하다. 화려하진 않지만 동영상도 포함되어 있어 이해도가 높은 편.
다만 글을 작성한 시점이 2007년이라 일부 항목에서는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제트님의 성향상 개인적으로 질문해도 좋은 답변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한 듯 하다.
그림이나 글은 복사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았으니 즐겨찾기를 통해 접속함이 번거로움을 덜 듯...


초보 탈출을 마치는 그날까지 아자, 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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