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 시대...
영어가 만국공용어로 통한지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영어에 대한 부담감은 나이의 많고 적음에 있지는 않은 듯 하다.

요즘은 국제화시대라는 타이틀이 보편화되어 아이들도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조기 영어공부를 시켜야한다는 엄마들의 열심이 하늘을 찌를 듯 하다.
(정작 자신들은 영어를 못하면서...ㅎㅎ, 나도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우리 애들도 엄마가 영어를 집에서 가르치는데,
나름 첫째 예담이와 하람이는 조금씩은 하는 듯 하다.

막내 주원이가 5월이면 만 3세가 되는데, 요녀석이 누나들 영어 하는 것 곁에서 보고는 제법 따라하기도 한다.
4살 밖에 안 된 녀석이 날리는 한 마디에 가족 모두 웃음바다가 될 때가 많다.

며칠 전 주원이가 집에서 까불다가 컵을 깼다.
컵을 깨고는 직감적으로 야단맞을 줄 알았는지, 엄마에게 심각한 얼굴로 다가간다.
엄마에게 최대한 공손함과 죄송함의 얼굴을 하고서는 날리는 한마디
그것도 영어로....

"엄마.... I am happy!" ??
????

그릇 깨고 해피하다고??@.@;
주원이는 누나들이 늘 'Happy', 'Sorry' 하니까 대충 눈치까고 제 딴엔 아는 영어 한마디 날렸는데...
미안하단 말을 'happy'로 착각했나 보다. 쩝...!

순간 엄마는 너무 황당해서 웃을 수 밖에 없었단다.
얼굴은 잔뜩 겁먹고 찡그렸는데, 입에서는 행복하다고 고백하니...ㅋ,ㅋ

암튼 우리 아들 영어공부좀 해야겠다!!ㅎㅎ
-행복한 우리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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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늘 대하는 커피.., 
심심할 때 한 잔, 밥 먹은 뒤 한 잔,
친구와의 대화중에 한 잔, 손님접대를 위해 한 잔... 


커피에 대해 말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바로 중독이다.

유독 다른 식품보다 중독성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커피의 유혹은 카페인에서 비롯된다. 커피는 까맣지만 카페인은 하얗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커피 한잔에는 40∼108mg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한국인이 하루에 소비하는 카페인의 양은 1인당 50mg 이란다.

카페인은 냄새는 없고 고유한 쓴맛을 가지고 있으며 뜨거운 물에 잘 녹는 성질이 있다.

몸속에 섭취된 카페인의 대부분은 간에서 분해돼 신장을 거쳐 24시간 내에 소변으로 배출된다.

커피(카페인)가 인체에 미치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전문가의 의견을 빌어 알아보자.

 



▶ 커피가 몸에 좋은 점


[1] 담석증

카페인은 담석증의 발생위험을 낮춘다.

담석은 주로 담즙과 콜레스테롤이 뭉쳐 생긴다.

카페인이 담낭 운동을 촉진하고 이뇨 작용으로 콜레스테롤 축적을 막는 것으로 추정된다.


[2] 유방암

폐경여성이 카페인을 섭취하면 유방암 발병 위험이 낮아진다.

카페인이 에스트로겐 분비를 줄이고 프로게스테론 분비를 늘리기 때문이다.


[3] 숙취 해소

알코올이 체내에서 분해돼 아세트알데히드로 변하는데 이 성분이 숙취를 유발한다.

카페인은 이뇨 작용으로 아세트알데히드 배설을 촉진한다.


[4] 간경화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간경화 발생률이 낮다.

커피 성분 중 카페스톨은 혈중 중성지방의 수치를 적정하게 높이고 간 효소를 낮추는 등

간 기능 보호 역할을 한다.


[5] 다이어트

카페인은 지방을 분해하고 체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우리 인체는 에너지를 소비할 때 단백질 다음으로 지방을 소비하지만 카페인은 지방을 먼저 소비하도록 한다. 또 이뇨작용으로 지방을 배출한다.

다만 다이어트를 위해 커피를 마신다면 설탕이나 크림 등을 섞어 마시는 건 금물이다.


[6] 기억력 향상, 우울증 예방

커피를 마시면 기억력, 추리력 등이 향상되고 우울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이는 카페인이 중추신경을 흥분시켜 피로감을 줄이고 각성 효과를 낸다.




▶ 커피가 몸에 나쁜 점


[1] 위장 질환

카페인은 위벽을 자극해 위산이 많이 나오게 한다. 따라서 위산이 역류하며 속쓰림이 심해진다.

위산과다가 있거나 위궤양 증상, 장염이나 과민성 대장질환이 있는 사람은 커피를 피해야 한다.


[2] 골다공증

카페인은 장에서 칼슘 흡수를 막고 소변으로 칼슘이 빠져나가도록 한다.

점차 골밀도를 떨어뜨려 골다공증을 생기게 할 수 있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골절 위험이 높아진다.


[3] 방광염

커피는 방광 근육을 자극해 소변을 더 마렵게 한다.

방광염을 악화시키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4] 혈압

카페인은 혈압을 상승시킨다. 심장 근육을 자극해 박동 수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반대로 저혈압 환자라면 하루 한두 잔의 커피가 활력이 될 수 있다.


[5] 임신부

하루 7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면 저체중 출산이 늘어나고 조산할 수 있다.

섭취된 카페인이 체내에서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간이 보통 사람은 5, 6시간인 데 비해

임신부는 18시간 이상 걸린다.

 

이상으로 커피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기호식품은 그야말로 자신의 기호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지구상에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뭐든지 지나치면 모지라것만 못하다는 현인들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할 때이다.

자신의 건강 상태를 잘 진단해 본 후에 지혜롭게 잘 선택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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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랫만에 컴퓨터랑 또 씨름을 한 번 하게 되었다.

집에 컴퓨터가 갑자기 인터넷이 않된다고 해서, 점검을 했고, IP 주소를 찾지 못해

늘 하던 대로 이전 시점으로 복구를 눌렀는데, 그만 윈도우에 치명적 에러가 생겨서

윈도우가 시동이 않걸리는 것이었다.


결국 갖가지 방법으로 씨름했고, 복구에 실패했다.

인터넷에 있는 각종 자료들을 여기저기 찾아보고, 짧은 컴퓨터지식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얼마전부터 버벅대던 삼성 320G 하드디스크의 에러로 이어졌다.

슬레이브로 잡아보니, 데이터 자체가 읽어지지 않아 결국 포맷을 해야할 지경이다.

아마도 Bad Sator가 났나보다.



삼성 A/S센터에도 방문해야겠지만, 아마도 복구가 힘들면 제일 안타까운 가족사진이 다

날라가게 생길 판이다.

그간 가족 관련한 사진 및 동영상 자료를 다 옮겨놓아서 컴퓨터에 사진 자료가 제일 많은데

복구가 힘들면 그간 사진들을 분실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업무컴퓨터와 노트북에 조금 있지만, 그 때 그 때 타저장매체로 저장을 해 놓지 않은 관계로

백업이 않될 시에는 많은 자료를 놓치게 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크다.

일단은 센터에 맡겨봐야 할 듯 하다.

덕분에 원치 않는 가물가물한 컴퓨터 지식에 불을 지피는 결과를 낳았지만,

이제는 늙었는지 영 호기심이나 메리트는 없는 듯 하다.

아무튼 연속된 삽질 후에 인터넷이 되도록 잡아주고 하루를 마감하게 되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 항상 다가올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중요한 자료는 정기적으로 백업받을 것!)을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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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새로 하고 이전에 컴퓨터책상으로 쓰던 식탁이 너무 넓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고민 하던 중 큰 맘 먹고 컴퓨터전용책상을 구입했다. 이것저것 뒤져보고, 따져보고, 비교해보고....

그래서 내린 결정이 좋은가구 GF-G777 강화유리 컴퓨터 책상.

배송부터 설치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1. 배송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배송비는 무료였고, 배송은 주문후 바로 다음날 도착했다.
한진택배를 통해 물건을 받았는데, 포장은 꼼꼼한 편이었으나 배송기사는 매우 불친절했다.
아내 혼자 무거운 짐을 복도에서 끌고 들어오느라 끈이 많이 흐트러진 상태다.


2. 포장상태
함께 동봉된 설명서... 친절하고 자세한 안내가 있어 조립에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배송된 두 개의 상자 중 부품이 들어있는 B상자(조립을 위한 작은 드라이버도 포함돼 있다.)


 
단가를 낮추다 보니 용접한 흔적들이 곧곧에 보인다.(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을듯...)


 
금형을 하는 동안 나사구명이 깔끔하게 처리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물론 눈에 띄진 않는다)


 
각자 부품을 연결하는 나사들이 비닐을 통해 잘 구분되어 있다.


 
강화유리 2장이 포함된 A상자. 스티로폼 완충제를 잘 썼는데, 꺼내는 동안 스티로폼 가루가 많이 날렸다



3. 조립

부품을 다 꺼내고 본격적인 조립에 들어갔다.
1단계: 판넬에 받침대를 조이고 봉을 이용해 좌우 판낼을 고정시킨다 

 
2단계: 아래쪽의 MDF합판과 중간층의 프린터 받침대를 볼트를 이용해 설치한다.
주의할 점은 좌우 수평을 잘 맞추어야 볼트가 부드럽게 잘 들어간다는 점


 
3단계: 나사로 조여준 받침대를 고정하기 위해 뒷 판넬을 대고 볼트를 조여준다.(생각보다 튼튼하다)
반드시 주의할 점은 꼭 조인다고 나사를 많이 돌리면 판넬이 우그러진다는 점.


 
4단계: 키보드 슬라이드를 조립하기 위해 L형 꺽음쇠를 레일에 부착한다


 
레일의 좌우 구분은 없으나 레일 안쪽으로 오도록 꺽음쇠를 달아준다
주의할 점은 레일과 L꺽음쇠의 수평을 잘 맞춰줘야 키보드 슬라이딩이 잘 된다.


 
5단계 B상자에 포함된 부품들은 다 조립하고 프레임이 완성시킨다.


6단계: A상자 안에 강화유리를 꺼내 드라이버로 아래쪽에서 볼트를 이용, 조여준다.
주의할점은 너무 세게 조이면 키보드 받침대의 레일이 뻑뻑해지니 꽉 조이지는 말 것!


 
7단계: 마지막으로 상판 강화유리의 6개 기둥을 본체와 볼트로 연결하면 조립 완성


완전히 조립된 상태
사진 찍으면서 조립하느라 1시간 걸렸다^^


4. 설치
조립이 끝난 책상에 쓰던 컴퓨터를 올려 놓았다.
본체 크기가 확장이 용이한 미들타워형인데도 넉넉한 편이다.
캐논 복합기(MP145)도 수납이 넉넉하다.
프린터 아래에는 관련자료수납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의자까지...


6.총평 ★★★★☆

설치하고 나니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아쉬운점을 쓰자면 배송기사의 불친절과 제품의 꼼꼼한 뒷마감이 아쉬웠다.
판매자가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택배사를 바꿔야할듯...
위에 것만 빼고는 별 5개를 줄 수 있었는데...^^

수납공간도 넉넉하고 설치공간도 작게 차지해서 공간활용이 용이하다.
외관상 보기도 좋다. 강화유리에 들어가 블루톤과 회색의 금속판넬들이 잘 조화를 이룬다.
고급스럽다. 자질구레한 선들도 뒷쪽 판넬에 다 숨겨 버렸다.
설치한 책상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불편함이 전혀 없고, 아주 편하다.
컴퓨터책상 구입을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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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전시컨벤션센터(BEXCO)에서 개최되었던 '테디베어의 세계여행' 박람회를 다녀왔다.

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는 곰 인형인 테디베어의 역사와 각 나라별 테마로 꾸며 놓은

아기자기한 코스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쏙 빼았아 간 것 같다. 

어른들은 힘들지만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가 힘을 얻었단다.

아내가 찍어온 테디베어 세계여행 박람회 속으로 들어가보자!

바이킹 테디베어

프랑스 포도주를 생산하는 태디베어들


비너스 테디베어


도시에 사는 테디베어들


어린왕자 테디베어


라푼첼 테디베어


언제나 웃음넘치는 첫째


이솝우화 청개구리(이건 테디베어가 아닌듯..)


백설공주 테디베어


튤립과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


투우와 열정의 나라 스페인


어딘지 잘 모르겠음^^


로마 신전 앞에서 한 컷!


호주 오페라 하우스


노르웨이 바이킹
영국 근위대 테디베어
로마 콜로세움 테디베어(국가 원로이신듯..^^)


어딜 그렇게 열심히 보는겨??


프랑스 파리 개선문(아마도 나폴레옹 테디베어이신듯...^^)


달나라에 간 테디베어들(토끼와 곰의 경계에 서다!)


콜라 먹는 북극곰과 함께(테디베어 가족인듯..^)


한참을 뚤어지게 보는 둘째!


곰이 말은 탄다?? 엽기다.^^


아라비안 나이트로 간 테디베어들.. 중간에 원숭이도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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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스탠포트 대학교 졸업식 연설문

 
이 연설문은 스티브잡스가 2005년 미국의 명문대학인 스탠포트 대학교의 졸업식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근대 최고의 연설문 중 하나로 평가될 만큼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짧지만 강렬한 그의 메시지에 수 많은 사람들이 감동과 도전을 받았다.

지금 그 감동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연설문 전문>>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세계 명문대로 꼽히는 대학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오늘 이 자리만큼 대학졸업식을 가까이서 목격한 적은 없습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오늘은 제 인생에서 일어났던 세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그뿐입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딱 세가지 이야기입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들려 드릴 첫 번째 이야기는 점 잇기에 관한 것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리드 칼리지 Reed College에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자퇴를 했으나

일년 반 정도 청강생활을 하면서 머물렀습니다.


So why did I drop out?

그렇다면 왜 제가 자퇴를 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이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 갑니다. 생모는 당시 대학원을 다니던 미혼모였는데,

저를 양자로 보낼 결심을 하셨죠.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어머니께서는 제가 대졸학력을 가진 부부에게 입양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 마자 변호사 부부가 입양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런데 제가 태어나기 직전에 이 부부는 여자 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은 한밤중에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셨죠.

"예정에 없던 사내 아이가 태어났는데 받으시겠습니까?"

양부모님의 대답은 "물론입니다." 였습니다.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데 저를 낳아주신 어머님은 나중에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입양동의서에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양부모님께서 저를 꼭 대학에 보내시겠다고 약속을 한 지

몇 달이 지나서야 친 어머님은 마음이 누그러지셨죠.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로부터 17년 후에 대학에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순진하게도 스탠포드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택했습니다.

일반 근로자였던 양부모님이 저축한 모든 돈이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6개월 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제가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대학 교육이

어떤 도움이 될 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그리고 저는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을 까먹고 있었죠.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자퇴를 결심했고,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당시에는 꽤 두려웠지만, 돌아 보면,

제가 인생에서 내린 최고의 결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자퇴를 하고 나니, 관심 없었던 필수과목 대신 듣고 싶었던 강의를 청강할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낭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기숙사에 방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네 집 거실에서 잠을 잤고,

콜라 빈 병을 모아 재활용센터에 갖다 주고 병당 5센트를 받아서 먹을 것을 샀고,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은 양질의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 십 킬로미터를 걸어

하레 크리슈나 the Hare Krishna 사원(역주: 힌두교 계열)의 일요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I loved it.

그곳에서 식사는 정말로 좋았습니다.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제 호기심과 직감으로 얻는 대부분의 경험은 이후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재산이 되었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예를 한가지 들어 보지요: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그 당시 리드 칼리지에서는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교정 곳곳의 포스터, 서랍의 레이블 마다 아름다운 서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자퇴를 했으니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서체 수업을 듣기로 작정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세리프와 산 세리프 서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자모의 결합에 따라서

자간을 달리 둠으로써 훌륭한 서체를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것은 아름다웠고, 역사적으로 유명했으며, 과학은 따라 갈 수 없는 섬세한 예술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매료되었죠.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이것이 내 인생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될 것인가 하는 한 가닥 희망 조차 없었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하지만 십 년 후,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의미가 와 닿았습니다.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매킨토시와 접목을 시켰을 때, 미려한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탄생했으니까요.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제가 만약에 그때 서체 수업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매킨토시는 다중 서체나 비례적으로 자간을 조정하는 글꼴을 가지지도 못했을 겁니다.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그리고 윈도우즈가 맥을 그대로 따라 했으니까,

매킨토시뿐만 아니라 그 어떤 퍼스널 컴퓨터도 비슷한 처지에 놓였겠죠.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자퇴를 하지 않았더라면, 서체 수업을 청강하지 않았을 테니,

퍼스널 컴퓨터는 오늘날과 같은 훌륭한 인쇄술을 가지지도 못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었을 때에는 이런 미래의 점들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돌아 보았을 때, 모든 게 분명히 보였습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다시 말씀 드리지만, 우리는 미래의 점들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과거의 점들만 이을 수 있는 거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이런 점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이어진다고 믿어야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운명), 그 무엇이건 간에 믿어야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제 인생관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대한 것입니다.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운 좋게도 저는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일찍 찾았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 나이 스무 살에 워즈 Woz와 같이 부모님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를 시작했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 안에 애플은 사천 명 이상의

직원을 가진 20억불 짜리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창사 이래 최고의 걸작품인 매킨토시를 전년도에 출시했고 그때 제 나이가 서른이었습니다.

 

And then I got fired.

그리고 저는 해고를 당했죠.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스스로 창업한 회사로부터 어떻게 해고를 당할 수 있느냐구요?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애플의 규모가 점점 커감에 따라 저와 함께 회사를 운영해 나갈 재능이

걸출하다고 생각한 사람을 영입했고, 한 해 정도는 잘 굴러 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러다가 회사의 장래에 관한 견해가 엇갈리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불화로 번졌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그런데 이때, 회사의 이사진들은 그 사람 편을 들었죠.

 

So at 30 I was out.

그래서 나이 서른에 쫓겨 났던 겁니다.

 

And very publicly out.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말입니다.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제 인생의 초점이 사라졌고, 그것은 크나큰 충격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몇 달 동안 무엇을 해야 좋을 지 앞이 깜깜했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제 쪽으로 오던 바톤을 놓친 것처럼 한 세대 전의 기업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빗 패커드(역주; 휴렛 패커드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역주; 인텔의 공동 창업자)를 만났고 볼쌍 사나운 제 실패에 대해 사과를 하려고 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아주 공공연한 실패작이라 차라리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을 칠까 하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그러나, 무엇인가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여전히 제가 하던 일을 사랑했습니다.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애플에서 있었던 사건은 그 사랑을 조금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축출당했지만, 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다짐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 당한 사건은 돌아 보면

제 인생에서 일어났던 최고의 사건으로 판명되었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성공이라는 무거움을 벗고, 확신은 전보다 줄었지만,

다시 처음 시작한다는 가벼움으로 임했습니다.

 

It freed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of my life.

해방된 기분을만끽하며 제 인생의 가장 창의적인 시기로접어 들게 되었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그로부터 5년간, NeXT, 그리고 Pixar를 창업했고, 제 아내가 될 멋진 여자와 사랑에 빠졌죠.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Toy Story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놀라운 반전으로 애플은 NeXT를 인수했고, 저는 애플로 돌아 왔고,

NeXT에 개발했던 기술은 현재 애플 르네상스의 핵심입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그리고 로렌스와 저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죠.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확신합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그것은 지독하게 입에 쓴 약이었지만, 그 환자는 그 약이 필요했나 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때로 삶은 당신의 머리를 벽돌로 칩니다.

 

Don't lose faith.

신념을 버리지 마세요.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제가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이유는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임을 이제 잘 알고 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듯이 일도 그런거죠.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자신이 하는 일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고,

진정한 만족을 얻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가 훌륭한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아직도 그것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 보세요.

 

Don't settle.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마세요.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가슴으로 알 수 있는 모든 일이 그렇듯, 일단 찾았으면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인지 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위대한 사랑처럼, 해를 거듭할 수록 점점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그러니, 그 일을 찾을 때까지 계속 탐색을 하십시오.

 

Don't settle.

현재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열 일곱 살 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마지막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옳은 길로 들어 설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이 말에 감명을 받은 저는 그로부터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이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요." 라는 대답이 계속 나온다면, 무엇인가를 변경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곧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야 말로

제가 인생의 중대 결정을 내릴 때 의지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왜냐하면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심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은 죽음의 면전에서 밑으로 가라 앉고,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은 잃어버릴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당신은 이미 벌거벗은 상태입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일년 전쯤에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30반에 CT 촬영을 했는데, 췌장에 종양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전 췌장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이 암은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며, 길어야 석 달에서 여섯 달이라고 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에 가서 주변을 정돈하라고 했는데, 환자들에게 죽을 채비를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것은 자식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하리라 생각했던 이야기를 불과 몇 달 안에 다 하라는 것입니다.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그것은 매사를 잘 마무리해서 가족들이 받을 충격을 가능한 한 줄이라는 뜻입니다.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그것은 작별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온종일을 보냈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날 저녁,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목구멍으로 통해서 위장을 거쳐 장까지 내시경을 넣고,

췌장에 바늘을 꽂아서 종양에서 세포를 채취했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현미경으로 조직세포를 본 결과 아주 드문 췌장암의 한 종류로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드러나 의사들이 눈물을 글썽거렸다고 당시 곁에 있던 아내가 말했습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그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때만큼 죽음의 문전에 가까이 가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다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 일을 겪고 나니, 죽음 자체가 유용할 수 있지만 순전히 지적인 개념이었던 시절보다

좀 더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하늘나라에 가고 싶은 사람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기를 원치는 않습니다.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하지만 죽음은 어느 누구나 도달하는 목적지입니다.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과도 같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지요.

 

It is Life's change agent.

죽음은 '삶'의 변화물질입니다.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옛 것을 치우고, 새것을 위한 공간을 만듭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 그 '새것'은 바로 여러분이지만, 언젠가 여러분도 '옛 것'이 되고, 치워지겠죠.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지나치게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면서 낭비를 해서는 안됩니다.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다른 이의 생각이 빚어낸 결과가 구속하는 삶, 즉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여러분 안의 목소리가 다른 이의 의견이 내는 소음에 익사 당하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And most important thing is to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 있게 당신의 가슴과 직감이 하는 말을 따르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이 두 가지는 어떤 식으로든 여러분이 진정 무엇이 되고자 하는 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그 이외의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입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렸을 때, '지구 백과'(The Whole Earth Catalog)라는

굉장한 책이 있었는데 우리 세대 바이블 중 하나였죠.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지금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맨로팍 Menlo Park에 살던

스튜엇 브랜드 Stewart Brand 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이 책에 자신만의 시적 영감을 불어 넣었죠.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1960년 후반이었는데 퍼스널 컴퓨터나 탁상 출판이 출현하기 전이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구글이 존재하기 35년 전에 있었던, 책으로 된 구글 같은 것이었죠.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엇과 그 팀은 전체 지구 목록의 몇 가지 증보판을 냈고, 수명을 다했을 무렵, 최종판을 출판했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1970년 중반이었고, 그때 저는 지금의 여러분 나이였습니다.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최종판 뒷 쪽 커버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모험심이 넘치는 청춘이라면 그 길에서 히치 하이킹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함께. 바보스러움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그것은 그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습니다. 늘 제 자신이 그러기를 소망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바보스러움과 함께.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이제 여러분은 새 출발을 위해 졸업을 하고, 저는 여러분께 똑같은 소망을 보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에 머물라 . 바보스러움에 머물라.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첨단 IT제품들로 만들어진 스티브잡스의 모자이크

  

스티브 잡스(Steve Jobs)
  - 1955.2.25.일생(54세), 미국 샌프란시스코
  - 부인과 4명의 자녀와 살고 있음.
  - 애플의 창업자, 최고경영자(CEO)
  - NeXT, PIXAR CEO 역임
  -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혁신제품으로 애플사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끌어올린 천재 기업가.
  - 2007,2009 포춘지 선정 최고의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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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그 뜨거웠던 6월 민주항쟁으로 여행을 떠나며...


☞ 저자: 최규석(만화작가)

☞ 출판사: 창비(창작과 비평)창작과 비평…

☞ 출간: 2009년 6월  

100˚C...
물이 끓어 오르는 온도...

이땅의 민주화를 위해 수없이 외쳐온 그들의 함성이
마침내 끓어올라 결실을 맺어던 1987년의 6월 민주항쟁!

만화라 부르기에는 그 주제가 너무도 무겁고,
책이라 하기엔 내용이 간결하다. 
1987년 6월10일, 6월 민주항쟁을 배경으로 씌여진 이 책은 작가가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로부터 작품을 제안받아 제작한 책이다.


1977년생인 작가가 초등학교 3학년일때 일어난 이 사건을 어떠한 시선으로 재구성했을까하는 의문을 품게 하며 손에 들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작가 특유의 예리한 시선과 이야기 전개에 오히려 빨려들게 되었다. 마치 사건 현장의 중심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면서... 

1987년 그 때나 지금이나 시민운동, 민주화 운동이라는 슬로건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다. 경쟁에 뒤지지 않고 남들보다 한발 앞서기 위해 피땀흘려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제는 어쩌면 분에 넘치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독재와 폭력에 항거해서 피땀 흘려 싸워 온 기성세대들의 수고와 노력이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 시내 곳곳에서 날아오는 최루탄 냄새 때문에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시대의 암울함을 앉고 함께 투쟁하기에는 너무도 어렸다.    

불과 십수년전의 일이 마치 남의 나라 일처럼 들려질 만큼 지금의 사회는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편견과 차별의 벽, 이념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회적 문제가 거론되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을 추스르기에도 너무나 바쁘기 때문이다.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사고로 가득찬 현대에서 민주화란 그저 사회적 극소수의 관심분야일 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신문을 펼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정치면 보다는 오히려 사회면, 문화면에 먼저 시선이 간다.
국익보다는 당리당약을 위해서만 피 터지게 싸우는 한심한 정치인들을 보면 화가 난다.
도데체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너무나도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정치적 무관심은 지금의 질서에서 힘을 가진 기득권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준다'라는 사실 앞에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것이 정치다. 정치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민주주의는 더욱 그러하다.그러기에 국가의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국민들은 그 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지를 보내야만 한다.  

2009 올해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할 만큼의 작품력을 인정받은 최규석작가의 <100˚C>...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명제를 아는 국민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필독서임에 틀림없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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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센텀시티 5층에 위치한 시네드쉐프( Cine De Chef)에 다녀왔다.

영화와 식사를 동시에 할수 있는 프리미엄 영화 레스토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잠시 시네드쉐프 센텀점을 들여다 보자.



5층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좌측에 로고가 부착된 유리 벽면을 볼 수 있다.


입구에 비치된 안내판에는 현재 상영영화들과 메뉴판이 설치되어 있다.

신세계 5층은 식당가도 아니고, 영화관도 아니기 때문에 위치가 썩 좋은 편은 아닌듯 하다.
 
게다가 외부에서 볼 때 이 곳의 정체가 뭔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발을 들여 놓기에는

여전히 문턱이 높은 듯 하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좌측에 보이는 대기실 및 휴게실..

생각보다 너무 력서리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저 쉽게 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다.




씨네드 쉐프 정문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전경과 안쪽에서 입구쪽을 바라본 전경.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좌측 상단에 대형 스크린이 펼쳐저 있다.

스크린을 통해서 영화에 관한 정보 및 이벤트를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창가쪽에는 12명정도 모임이 가능한 룸이 있다.

이곳에서 식사와 회의가 가능하며, 4층에 있는 실내 아이스 링크장에서 열리는 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샤롯데, CGV스타리움과 비슷한 프리미엄 영화관...

여기에는 A관, B관 2곳의 상영관이 있으며, 각 64석, 30석의 좌석이 비치되어 있다.

단체 대관도 가능하다고 한다.



                                                            A, B관 좌석 배치도


영화관으로 가는 통로에 비치된 와인잔 인테리어가 공간을 더욱 돗보이게 하고 있다.


대관과 관련된 음식가격은 아래표를 참조하면 된다.

식사만 하는 단일메뉴의 경우는 1만원부터 8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찾아오는 길은 아래 약도를 참조하면 된다(홈페이지 플래시파일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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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이사한 집에 어떤 책장을 넣을까 고민하다가
아내가 다른 집에 가서 보고온 삼나무 원목책장을 구입했다.

구매한 제품은 가미안 삼나무 책장 4자 2개, 3자 1개, cd장 1개...
전체 길이가 12자정도 정확하게 한자에 30cm가 되지 않아 3m 40cm정도 된듯 하다.

일단 제품을 받아서 배송부터 설치, 정리까지 정리해보자면

1. 배송

배송은 연말이라 그런지 일주일 정도 소요되었다.
배송기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경기도 본사에서 주문을 모아서 일주일에 1톤 트럭 한 차 가득 3번 정도
지방에 내려온다고 한다. (그러니 결론적으로는 이틀에 한번꼴...)

설치후 수납한 모습

불박으로 새긴 가미안 로고


2. 설치

설치는 전문기사가 해준다고 했는데, 전문이란 말을 어느정도까지 봐야할지...
일단은 친절했고, 가미안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개인용달 사업자였다. 
단지 가미안과 계약하에 배송을 하시는 분 정도...
나름 설치도 꼼꼼하게 했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것은 책장끼리 고정하면서 구멍을 뚤어 볼트를 설치했는데,
구멍뚫어 생긴 톱밥가루들은 알아서 치우라고 하셨다.
치우는게 어렵진 않지만 치워주시는 척 하셨으면 더 높은 점수를 드렸을텐데... 

책장 사이를 고정하기 위해 박은 나사

3. 디자인

전체적인 디자인은 무난한듯 하다. 
크게 튀지 않는 색상에 구조 또한 무난하다. 
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월넛무늬가 고풍스러운 느낌이 있었는데,
아내는 가공되지 않은 원목느낌이라좋다고 한다. 
특별히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구입해도 좋을 듯 하다.
우리집처럼 흰색벽지에는 색이 뭍히는 느낌이나, 짙은 벽지를 쓰시는 분들에게 화사한 느낌이 들 듯 하다.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4. 품질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일텐데
다른 mdf재질에 pb제품, 멤브레인 가공품보다는 훨씬 좋은 듯 하다.
그만큼 그런 제품들보다는 가격면에서도 싼 편은 아니니까...
삼나무 자체가 조금 무른 성질이 있어서 그런지 
설치후 책을 올리는데조금만 부딪혀도 쉽게 자국이 나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표시는 난다.
사용하다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처음 사서 아끼는 제품이라면
반드시 책 넣으실 때 테두리에 부딪히지 않도록 해야한다. 바로 자국난다.

책 넣다 찍힌 자국 1

가공되지 않은 원목 그대로의 나무홈

책 넣다 찍힌 자국 2



5. 문제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개인적으론 CD장 정말 '비추'다.
바로 연결하면 어색할 듯 해서 하나 구입했는데,나름 포인트라고 안쪽에 붙여놓은 시트는 정말 아니었다.
구매한 사람들이라면 설치시 꼼꼼하게 살펴야 할듯...
얼마나 급하게 대충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나무랑 시트랑 따로 놀고 있었다. 
군데 군데 기포가 생겨있고 떠 있었다. 10개 중에 9개가 시트가 다 떠 있었습니다.
물론 딱딱한 나무로 다시 문질러서 붙이긴 했지만 이건 아니다.
품질에 대한 신뢰가 이 작은 것 하나로 팍 무너졌다.

가장 아쉬웠던 CD장 뒷편 시트지

6. 총평

설치한지 3일 지났는데도, 삼나무 특유의 냄새와 향이 남아 있습니다.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지만, 일단은 합격점인듯...
고급스럽고, 화사한 인테리어 느낌을 원한다면 강하게 추천하지는 않지만
무난하고 실용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적극 추천하는 편이다.
내구성은 일단은 두고봐야 할 듯 하니, 설치하신 다른 분들의 의견도 참조하면 좋을 하다.

장식을 위한 작은 화분 하나


굳이 같이 찍겠다는 작은 딸과 한 컷

## 구매 포인트
가미안 가구는 업체가 직접 판매하는 정찰가 판매이니 비교검색보다는
쇼핑사이트의 쿠폰을 활용해서 적절히 구입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나는 '인터OO' 자체 쿠폰을 발급받아 1만5천원정도 저렴하게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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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집에 컴퓨터가 말썽이라 잠시 봐주려했다가
잊고있던 짜투리 상식에 대한 욕구가 또 불타올랐다.
예전에 PC를 조립하기 위해 왠만한 스팩들이랑 이름들은 줄줄 외우고 다녔는데,
3년전에 PC조립한 이후로는 특별한 관심과 시간을 두지 않았다.

요즘은 컴퓨터 부품의 모델 교환주기가 너무 짧아지고,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해
매일같이 공부하지 않으면 쏟아지는 정보들을 다 소화할 수 없는게 실정이다.


              < 현재 다나와에서 200만원대를 형성한 인텔의 코어2익스트림 요크필드 QX9770 >


3년전 써브 컴퓨터로 조립할 때만해도 저가형에는 인텔 셀러론이나 AMD 754 소켓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잠시 살펴보니 AMD에서 AM2+소켓을 넘어 DDR3지원하는 AM3까지 나왔다고 한다.
잠시 찾아보니 AMD는 차세대 개발도구로 FM 시리즈로 출발할 예정이란다.
(마치 라디오가 AM에서 FM으로의 획기적 전환을 했듯이...)
인텔의 경우도 코어2 쿼드를 넘어 미래에는 메모리 컨트롤러와 인텔의 퀵패스 인터커넥트와 통합한
소켓B로 발전한다니 과히 따로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 다나와 AMD cpu중에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는 코어2익스트림 요크필드 QX9770 >
 

신제품이나 요즘 주력제품으로 옮겨탈려고 하니, 나름 가격부담이 많많찮은듯하다.
다행히 하려고 하는 컴퓨터의 주용도가 그리 사양이 높은 듯 해 보이지는 않으니
임시방편으로 512메모리를 하나더 추가해 1024M로 만들어주고, 
그래픽카드를 업그레이드 해주고 싶으나 가격이 많많찬은 관계로 일단 불안정한 CPU부터
중고시장에서 구입해줘야겠다.

집에 돌아와서 잠시 컴터를 켜서 보니 그새 컴 전문가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음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필요에 의해서 지금 잠시 또 몇가지 정보들을 들추고 다녀야겠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면 더이상 이런
골치 아픈 일에는 관심 쏟을 여유는 없을듯하다. 
암튼 오랫만에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재미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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