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부모는 자녀에게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한다. 커피에는 불면증, 위궤양, 가슴떨림 등을 일으키는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시와 소비자시민모임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이 많이 먹는 식품 중 100g(또는mL)당 카페인 함량이 가장 많은 것은 녹차 아이스크림 이었다. 이어 캔커피, 아이스티, 초콜릿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표 참조〉.


◆1~4위가 녹차 아이스크림

이번 조사는 카페인을 함유한 가공식품 45가지를 대상으로 지난 9월11월부터 25일까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이뤄졌다. 45가지 식품은 서울시내 초중고생들이 많이 사먹는 식품 위주(올 7월 서울시 조사)로 선정했다. 단, 녹차 티백, 콜라 등 일부 고카페인 식료품은 2007년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이미 함량 조사를 했기 때문에 이번 조사에는 제외했다.

분석 결과, 100g당 카페인 함량이 가장 높은 식품은 1위부터 4위까지 모두 녹차 아이스크림이었다. 1위는 한국하겐다즈의 '그린티'로 100g당 카페인 함량이 99.83㎎이었다. 이는 시중에서 파는 캔커피 100mL 당 함량의 3배 가까이 된다. 김희섭 수원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웰빙 추세에 맞춰 아이스크림에 녹차 성분을 많이 넣다보니 카페인 함량이 따라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정한 19세 미만 카페인 권장 섭취량은 체중 1㎏당 2.5㎎이다.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카페인 분해속도가 느리고 체중이 적게 나가 적은 양을 먹더라도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체중이 30㎏인 어린이는 75㎎이, 체중이 60㎏인 청소년은 150㎎이 하루 카페인 섭취 상한선이다. 실제 판매되는 낱개 제품의 중량을 감안하면, 체중 30㎏인 어린이는 웬만한 녹차아이스크림 한 개와 초콜릿 반 봉지 정도만 먹어도 하루 섭취 상한선을 넘어선다.

포장 단위로는 커피우유가 상위권

100g이 아닌 1회 제공량을 기준으로 카페인 함량 순위를 조사하자, 100g을 기준으로 했을 때에는 10위 안에 들지 않았던 동서식품의 '스타벅스 프라푸치노 병커피'가 2위, 푸르밀의 '커피우유'가 7위, 서울우유의 '서울우유 가공우유 커피'가 9위를 차지했다.

커피우유는 100g당 카페인 함량은 적지만, 1팩이 200mL로 돼 있어 1회 제공량 내 함량이 많아진 것이다. 체중이 20㎏인 어린이가 커피우유 두 팩을 마시면 하루 권장량을 초과한다.

김 교수는 "녹차와 홍차 잎, 콜라와 코코아 열매에도 커피 못지 않게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다. 특히 아이스크림, 과자 등의 원료가 녹차와 초콜릿인 경우가 많아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카페인을 섭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페인 많이 섭취하면 키 안크고 우울증 생겨


어린 나이에 카페인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성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카페인이 뼈 성장에 필수적인 철분·칼슘 등의 체내 흡수를 방해하고, 각성작용을 일으켜 성장호르몬 분비를 줄이기 때문이다. 또 카페인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분비에 영향을 미쳐 주위 산만 또는 우울증 등을 유발할 우려도 있다. 서은숙 순천향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어린이의 몸 안에 들어간 카페인이 완전히 몸 밖으로 배출되는데 3~4일 걸린다. 따라서 성인은 하루에 카페인 500㎎이상 섭취했을 때 중독 증상이 생기지만, 청소년은 200㎎, 어린이는 100㎎만 섭취해도 며칠씩 몸에 쌓여 중독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소비자가 식품에 카페인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문귀임 식품의약품안전청 첨가물기준과 연구관은 "식품에 카페인 함량을 반드시 표시해야 하는 법규정은 없다. 식약청 고시에 따르면 카페인이 1mL당 0.15㎎이상 들어있을 때에는 제품 겉면에 '고카페인 함유'라고 표시해야 하지만, 제품명에 '커피'나 '차'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이 규정에서 제외돼 실제로 이런 문구가 들어가는 식품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김희섭 교수는 "물론 녹차, 커피에는 암을 예방하는 카테킨, 폴리페놀 등 좋은 성분도 많이 들어있지만 어린이는 적은 양의 카페인으로도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카페인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헬스조선 홍유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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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기간 동안 눅눅해진 집 안 구석구석.
깔끔하고 상큼하게 거듭날 시기가 돌아왔다.
바로 가을 맞이 대청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새내기 주부부터, 청소 대행료에 부담을 느끼는

주부들을 위해 살림 9단 주부들이 입을 열었다.

경험에서 터득한 확실한 청소 비법, 지금부터 공개한다.

  

 

 물걸레질은 no! 돗자리 청소
 
끈적거리는 한여름 잠자리의 필수 아이템 돗자리.

하지만 돗자리의 틈새에 낀 먼지나 얼룩 청소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특히 잉크나 음료를 쏟았을 때의 난감했던 기억은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how to ?!

 여름 돗자리 틈새에 스며든 음료나 잉크를 해결하는 방법은 휴지와 우유.

음료수가 쏟아졌다고 바로 젖은 걸레로 닦았다가는 오히려 더 크게 번질 수 있으니 유의하자.

일단 휴지나 마른걸레로 빨아들인 다음 그 자리에 우유를 조금 붓고 마른걸레로 닦아내면 끝.

여름 끝에 돗자리를 장기 보관할 때는 먼지를 털고 비눗물 적신 솔로 문질러 닦아내면

때가 깨끗이 빠진다.

이때 그늘에 말린 뒤 니스 칠을 하면 다음 해까지 온전히 보존할 수 있다.

 

 

 

 

솔없이 곰팡이 제거, 다용도실 청소
 

 장마철 내내 다용도실의 세탁기 밑은 곰팡이와 물때로 가득.

가을맞이 대청소 리스트 1순위이기도 한 다용도실 청소.

바닥부터 벽, 천장까지 솔질로 청소할 생각하니 시작부터 기운이 빠지기 일쑤.

분무기로 손쉽게 청소하는 비법이 있다.

 
how to ?!

분무기에 농도 짙은 락스를 준비한다. 대부분 물과 희석을 하는데,

1:9 비율이나 100% 락스만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일단 환기를 위해 문과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천장부터 분무기로 락스를 뿌려준다.

특히 세탁기 뒷면과 바닥까지 꼼꼼히 뿌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뿌리고 나서 하루

정도 문을 열어두고,
물을 시원하게 뿌려주면 감쪽같이 깨끗해진다.

단, 락스 냄새가 빠질 때까지 후각적인 고통은 감수해야 한다.

 

  

 

 고무장갑으로 먼지를 말끔히! 침대 청소
 

 장마철은 공기 중 수분 때문에 섬유 등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매일 자고 일어나는 잠자리는 장마철에 세균이나 먼지의 공격을 받기 쉽다.

가을맞이 대청소에서 빠질 수 없는 침대 청소의 노하우는 고무장갑!

   

how to ?!

물에 적신 고무장갑을 끼고 침대 커버와 매트리스를 털어낸다.

엄청난 먼지가 고무장갑에 붙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물에 헹구어 같은 방법으로 여러 번 반복한다.

어느 정도 먼지의 양이 줄어들고 나면, 마지막으로 뜨거운 다림질로 마무리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소다와 식초의 만남, 싱크대 수납장 청소
 
 
부엌에서는 기본적으로 물을 많이 사용하는데다,

장마철 습기까지 더해져 싱크대 수납장에 곰팡이가 종종 생기게 된다.

특히 햇볕까지 잘 들지 않으니 관리를 잘 못하게 되면 가족의 위생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

 how to ?!

 곰팡이가 핀 싱크대 수납장은 소다를 풀어 닦는 것이 효과적.

곰팡이가 핀 찬장은 소다를 한 숟가락 정도 푼 물을 헝겊에 적셔 닦는다.

그 다음, 세제에 식초 몇 방울을 떨어뜨려 다시 한번 닦으면 곰팡이가 깨끗이 없어진다.

눈에 보이는 곰팡이 제거는 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균은  에코후레쉬로 제거해
재발하는 것을 막아준다.

집에 있는 것으로 효과 만점 청소까지 할 수 있는 똑똑한 살림 노하우.

 

 

 

  구멍난 양말을 양손에 끼고, 창틀 청소
 

 알루미늄 새시의 틈새에 있는 먼지 청소는 공간이 좁기 때문에 청소가 어렵다.

대부분 창문만 쓱싹 닦고 창틀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는 창문을 닦아도 청소한 기분이 들지 않아 아예 창문 청소에서 손을 떼는 주부들도 많다.

 

 how to ?!

 

아이들이나 남편의 구멍 난 양말을 모아보자. 다른 곳은 멀쩡해서 버리기는 아깝고,

바느질 하면 아이들이 싫어하고, 그래서 버렸던 양말들을 모아서 창틀 청소에 활용하는 것.

대야에 물을 담아 준비해둔 양말을 손에 끼고 적셔준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이용해 창틀의 먼지를 닦아주면 특별한 도구 없이 청소와 재활용의

일석이조 효과를 볼 수 있다.

마지막에는 또 다른 양말을 끼고 깨끗한 물에 적셔 마무리해준다.

 

 

 

신문지 하나면 쓱싹! 방충망 청소
 

여름 내내 벌레와 먼지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느라 두껍게 내려앉은 때가 부담스러운 방충망. 작은 구멍 하나하나까지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이 번거롭고 어려워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how to ?!

 방충망 한쪽 면에 신문지를 붙이고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해보자.

눈에 띄게 먼지를 제거 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세제에 담가둔 천으로 닦아주면 훨씬 깨끗해진다.

마지막으로 물걸레질로 마무리하면 구석구석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방충망이 된다.

 

 

 

랩으로 팩하면 깨끗해진다? 유리창 청소
  

자주 청소해주지 않으면 빗물이나 먼지 등으로 쉽게 더러워지는 유리창.

한 번 더러워진 유리창은 청소가 어려우니 자꾸 미루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how to ?!

 먼저 찌든 때가 낀 유리창에 세제를 뿌린다. 그 위에 랩을 붙이고 한 10분 정도 가만히 둔다.

그 다음 랩을 벗겨낸 뒤 걸레로 간단하게 때를 제거할 수 있다.

찌든 때 위에 랩을 씌워서 세제를 뿌리고 때를 불려주었기 때문.   환풍기에 낀 기름때도
 
같은 방법으로 쉽게 제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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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이 있다. `웃는 집안에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웃는 사람은 행복하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기업이나 국가에도 해당한다. 국운 상승도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 자주 웃을 수 있어야 결실을 맺을 수있다.

아이들은 하루에 평균 400번 정도를 웃는데, 어른이 되면서 하루 6번 정도로 줄어든다. 나이가 들면서 웃음을 잃고 더불어 건강도 잃게 되는 것이다.

의학적인 측면에서 웃음은 질병을 예방하기도 하고 치유하기도 한다. 사람이 크게 한번 웃으면 몸속의 근육 650개 중 231개 근육이 움직인다.

인체 근육의 약 3분의 1이 움직이는 웃음은 1분 동안 실컷 웃으면 10분 동안 에어로빅이나 조깅,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한다. 웃음은 또 1000억개에 달하는 뇌세포를 자극한다. 살짝 웃는 미소 역시 얼굴의 근육 15개가 움직여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훨씬 더 많은 근육이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몸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등 두 가지 자율신경이 있다. 놀람, 불안, 초조, 짜증이 섞힌 감정은 교감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어 심장을 상하게 하지만 웃음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심장을 천천히 뛰게 하고 몸 상태를 편안하게 만들어 심장병을 예방해 준다. 또한 웃음은 스트레스를 진정시키고 혈압을 떨어뜨리며 혈액순환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다. 웃음이 소화액 분비를 촉진시켜 식욕을 불러일으키고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크게 웃으면 윗몸 일으키기 25번 효과

= 15초 동안 박장대소(拍掌大笑ㆍ손뼉을 치며 크게 웃음)를 하면 100m를 전력 질주한 운동 효과와 맞먹는다고 한다. 또 크게 한번 웃으면 윗몸 일으키기를 25번 하는 효과와 3분 동안 노를 힘차게 젓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윌리엄 플라이 교수가 웃음과 심장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 얻은 결론이다.

웃음은 웃을 때마다 폐의 구석구석까지 혈액과 산소가 공급돼 폐의 기능이 좋아진다.

연세대 의대 노성훈 교수(세브란스병원 위암전문클리닉 팀장ㆍ대한위암학회장)는 `위암 완치설명서`라는 책에서 "웃음은 심장박동수를 높여 혈액순환을 돕고 몸의 근육에 영향을 미친다"며 "3~4분 동안 웃으면 맥박을 배로 증가시키고 혈액에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하며 복식호흡이 되기 때문에 `소화기 마사지 효과`를 볼 수 있고 변비예방에도 좋다"고 말한다.

팔을 활짝 펴고 호탕하게 웃으면 온몸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통증을 억제해주고 염증을 낫게 한다. 이는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뇌하수체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통증을 없애주는 호르몬이 왕성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에 노출될 경우, `코티졸`이라는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돼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기억력의 저장창고라고 할 수 있는 머릿속 해마조직을 파괴해 기억력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결국 치매로까지 악화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소리를 내서 크게 웃으면 코티졸 분비를 억제해 노화를 막고 뇌졸중까지 예방한다.

웃음은 스트레스 해소와 함께 두려움, 분노를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줘 오랫동안 질병에 시달린 환자들이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하는 데 적지 않은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마지못해 웃는 `억지웃음`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뇌는 가짜와 진짜 웃음을 구별하지 못한다. 억지로 웃든지, 진짜로 웃든지 뇌가 구별을 못하기 때문에 억지로 웃어도 90%의 효과가 있다.

◆ 웃음은 암 예방ㆍ치료에도 특효약

= 암을 예방하거나 암을 치료하는 데 웃음만큼 좋은 특효약이 없다. 암을 이겨낸 사람들의 노하우를 종합해 보면 현대 의학과 함께 긍정적인 마음, 부지런한 몸 놀림(운동), 자연식 위주 식생활 등이 올바른 암 극복법으로 손꼽힌다.

미국 로마린다 의과대 리 버크 교수는 웃음이 면역 시스템에 도움이 되는 킬러세포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증명했다. 버크 교수는 "진실에서 우러난 웃음은 혈액과 타액의 면역 글로블린 항체의 생성을 증가시키고 종양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감마 인터페론을 증가시킨다"며 "웃음 치료야말로 대체의학이 아니라 참의학"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 몸은 대략 60조~100조개 세포로 이뤄져 있다. 이들 세포는 모두 몸 주인의 뜻에 따라 반응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주인이 살려는 뜻을 세우고 `생각(生覺)`으로 무장하면 세포들이 살기 위한 반응으로 무장한다고 한다. 반대로 주인이 절망, 우울, 낙심과 같은 `사각(死覺)`으로 무장하면 세포들 또한 주인의 뜻에 따른다고 한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독일의 암병원에서는 매주 1회씩 어릿광대를 불러 환자들을 웃기고 있다. 뉴욕 장로교병원에서는 코미디 치료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의사가 웃음요법을 처방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대병원 등 일부 병원에서 웃음요법을 환자의 임상에 활용하고 있다.

◆ 어떻게 웃어야 제대로 웃는 것인가

= 웃음은 혼자보다는 여럿이 모여 함께 웃을 때 33배나 더 잘 웃게 된다고 한다. 웃음도 전염력이 있다는 얘기다. 잘 웃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웃음이 전염돼 곧잘 함께 웃게 된다. 평소 잘 웃지 않는 사람은 웃는 연습이 필요하다. `행복해서 웃기보다는, 웃다 보면 행복해지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것`을 깨닫으면서 말이다.

전문가들은 웃음은 크게 3가지 원칙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웃음의 3원칙은 △크게 웃어라 △내쉬는 호흡, 즉 날숨으로 10초 이상 웃어라 △웃음이 `내장 마사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크게, 그리고 숨이 끊어질 정도로 박장대소하라 등이다. 크게 웃으면 광대뼈 주위 혈과 신경이 뇌하수체를 자극해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시켜 기분을 좋게 만든다.

또 날숨은 몸 안의 독소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10~15초 정도 웃어야 한다.

10초 이상은 엔도르핀이 가장 많이 분비되기 때문에 웃음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특히 숨이 끊어질 정도로 끝까지 웃게 되면 진짜 웃음으로 전환된다.

웃음은 박수를 치면서 웃으면 훨씬 더 효과가 크다. 아이들이 정말로 신나게 웃을 때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방방 뛰며 웃는 것처럼 어른도 박장대소하고 웃어야 내장이 마사지되고 전신운동이 된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출처: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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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늘 대하는 커피.., 
심심할 때 한 잔, 밥 먹은 뒤 한 잔,
친구와의 대화중에 한 잔, 손님접대를 위해 한 잔... 


커피에 대해 말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바로 중독이다.

유독 다른 식품보다 중독성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커피의 유혹은 카페인에서 비롯된다. 커피는 까맣지만 카페인은 하얗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커피 한잔에는 40∼108mg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한국인이 하루에 소비하는 카페인의 양은 1인당 50mg 이란다.

카페인은 냄새는 없고 고유한 쓴맛을 가지고 있으며 뜨거운 물에 잘 녹는 성질이 있다.

몸속에 섭취된 카페인의 대부분은 간에서 분해돼 신장을 거쳐 24시간 내에 소변으로 배출된다.

커피(카페인)가 인체에 미치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전문가의 의견을 빌어 알아보자.

 



▶ 커피가 몸에 좋은 점


[1] 담석증

카페인은 담석증의 발생위험을 낮춘다.

담석은 주로 담즙과 콜레스테롤이 뭉쳐 생긴다.

카페인이 담낭 운동을 촉진하고 이뇨 작용으로 콜레스테롤 축적을 막는 것으로 추정된다.


[2] 유방암

폐경여성이 카페인을 섭취하면 유방암 발병 위험이 낮아진다.

카페인이 에스트로겐 분비를 줄이고 프로게스테론 분비를 늘리기 때문이다.


[3] 숙취 해소

알코올이 체내에서 분해돼 아세트알데히드로 변하는데 이 성분이 숙취를 유발한다.

카페인은 이뇨 작용으로 아세트알데히드 배설을 촉진한다.


[4] 간경화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간경화 발생률이 낮다.

커피 성분 중 카페스톨은 혈중 중성지방의 수치를 적정하게 높이고 간 효소를 낮추는 등

간 기능 보호 역할을 한다.


[5] 다이어트

카페인은 지방을 분해하고 체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우리 인체는 에너지를 소비할 때 단백질 다음으로 지방을 소비하지만 카페인은 지방을 먼저 소비하도록 한다. 또 이뇨작용으로 지방을 배출한다.

다만 다이어트를 위해 커피를 마신다면 설탕이나 크림 등을 섞어 마시는 건 금물이다.


[6] 기억력 향상, 우울증 예방

커피를 마시면 기억력, 추리력 등이 향상되고 우울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이는 카페인이 중추신경을 흥분시켜 피로감을 줄이고 각성 효과를 낸다.




▶ 커피가 몸에 나쁜 점


[1] 위장 질환

카페인은 위벽을 자극해 위산이 많이 나오게 한다. 따라서 위산이 역류하며 속쓰림이 심해진다.

위산과다가 있거나 위궤양 증상, 장염이나 과민성 대장질환이 있는 사람은 커피를 피해야 한다.


[2] 골다공증

카페인은 장에서 칼슘 흡수를 막고 소변으로 칼슘이 빠져나가도록 한다.

점차 골밀도를 떨어뜨려 골다공증을 생기게 할 수 있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골절 위험이 높아진다.


[3] 방광염

커피는 방광 근육을 자극해 소변을 더 마렵게 한다.

방광염을 악화시키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4] 혈압

카페인은 혈압을 상승시킨다. 심장 근육을 자극해 박동 수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반대로 저혈압 환자라면 하루 한두 잔의 커피가 활력이 될 수 있다.


[5] 임신부

하루 7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면 저체중 출산이 늘어나고 조산할 수 있다.

섭취된 카페인이 체내에서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간이 보통 사람은 5, 6시간인 데 비해

임신부는 18시간 이상 걸린다.

 

이상으로 커피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기호식품은 그야말로 자신의 기호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지구상에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뭐든지 지나치면 모지라것만 못하다는 현인들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할 때이다.

자신의 건강 상태를 잘 진단해 본 후에 지혜롭게 잘 선택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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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새로 하고 이전에 컴퓨터책상으로 쓰던 식탁이 너무 넓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고민 하던 중 큰 맘 먹고 컴퓨터전용책상을 구입했다. 이것저것 뒤져보고, 따져보고, 비교해보고....

그래서 내린 결정이 좋은가구 GF-G777 강화유리 컴퓨터 책상.

배송부터 설치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1. 배송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배송비는 무료였고, 배송은 주문후 바로 다음날 도착했다.
한진택배를 통해 물건을 받았는데, 포장은 꼼꼼한 편이었으나 배송기사는 매우 불친절했다.
아내 혼자 무거운 짐을 복도에서 끌고 들어오느라 끈이 많이 흐트러진 상태다.


2. 포장상태
함께 동봉된 설명서... 친절하고 자세한 안내가 있어 조립에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배송된 두 개의 상자 중 부품이 들어있는 B상자(조립을 위한 작은 드라이버도 포함돼 있다.)


 
단가를 낮추다 보니 용접한 흔적들이 곧곧에 보인다.(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을듯...)


 
금형을 하는 동안 나사구명이 깔끔하게 처리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물론 눈에 띄진 않는다)


 
각자 부품을 연결하는 나사들이 비닐을 통해 잘 구분되어 있다.


 
강화유리 2장이 포함된 A상자. 스티로폼 완충제를 잘 썼는데, 꺼내는 동안 스티로폼 가루가 많이 날렸다



3. 조립

부품을 다 꺼내고 본격적인 조립에 들어갔다.
1단계: 판넬에 받침대를 조이고 봉을 이용해 좌우 판낼을 고정시킨다 

 
2단계: 아래쪽의 MDF합판과 중간층의 프린터 받침대를 볼트를 이용해 설치한다.
주의할 점은 좌우 수평을 잘 맞추어야 볼트가 부드럽게 잘 들어간다는 점


 
3단계: 나사로 조여준 받침대를 고정하기 위해 뒷 판넬을 대고 볼트를 조여준다.(생각보다 튼튼하다)
반드시 주의할 점은 꼭 조인다고 나사를 많이 돌리면 판넬이 우그러진다는 점.


 
4단계: 키보드 슬라이드를 조립하기 위해 L형 꺽음쇠를 레일에 부착한다


 
레일의 좌우 구분은 없으나 레일 안쪽으로 오도록 꺽음쇠를 달아준다
주의할 점은 레일과 L꺽음쇠의 수평을 잘 맞춰줘야 키보드 슬라이딩이 잘 된다.


 
5단계 B상자에 포함된 부품들은 다 조립하고 프레임이 완성시킨다.


6단계: A상자 안에 강화유리를 꺼내 드라이버로 아래쪽에서 볼트를 이용, 조여준다.
주의할점은 너무 세게 조이면 키보드 받침대의 레일이 뻑뻑해지니 꽉 조이지는 말 것!


 
7단계: 마지막으로 상판 강화유리의 6개 기둥을 본체와 볼트로 연결하면 조립 완성


완전히 조립된 상태
사진 찍으면서 조립하느라 1시간 걸렸다^^


4. 설치
조립이 끝난 책상에 쓰던 컴퓨터를 올려 놓았다.
본체 크기가 확장이 용이한 미들타워형인데도 넉넉한 편이다.
캐논 복합기(MP145)도 수납이 넉넉하다.
프린터 아래에는 관련자료수납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의자까지...


6.총평 ★★★★☆

설치하고 나니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아쉬운점을 쓰자면 배송기사의 불친절과 제품의 꼼꼼한 뒷마감이 아쉬웠다.
판매자가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택배사를 바꿔야할듯...
위에 것만 빼고는 별 5개를 줄 수 있었는데...^^

수납공간도 넉넉하고 설치공간도 작게 차지해서 공간활용이 용이하다.
외관상 보기도 좋다. 강화유리에 들어가 블루톤과 회색의 금속판넬들이 잘 조화를 이룬다.
고급스럽다. 자질구레한 선들도 뒷쪽 판넬에 다 숨겨 버렸다.
설치한 책상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불편함이 전혀 없고, 아주 편하다.
컴퓨터책상 구입을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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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하루 더 주어져서 큰 애랑 둘째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놓고 정말 오랫만에 아내랑 영화를 한 편 봤다.
둘 다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이들 없는 동안 둘 만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아침부터 정신없이
극장으로 직행 9시부터 시작하는 조조 영화를 봤다.


함께 본 영화는 2009년 전세계 최고의 히트작이라는 '아바타(Avatar)'


감독 : 제임스 카메론
         - 스티븐 스필버그를 능가하는 영화계의 양대산맥. 
         - 이영화를 기획한지 15년만에 드디어 꿈을 이루었단다

주연: 샘 워싱턴(제이크 설리 역)
        - 특별히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30세에 오디션을 통해
           제임스카메론 감독에게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조이 살디나(네이티리 역)
        - 캐리비안의 해적과 영화 스타트랙에 출연하여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이지만 영화에서는 실제모습을 한번도 드러내지 않는다.
         
        시고니 위버(그레이스 박사 역)
        스티븐 랭(쿼리치 대령 역)




시작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여러 비평가들로부터 혹평과 악평을 동시에 받았던 터이고,
'권선징악'이라는 진부한 스토리라 특별한 메리트는 없었던 것 같았는데, 각종 차트 및 기록을 깨면서 주변에서
입소문이 번지길래 한 번 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변에서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도 다 재밌다길래 영화를 보기로 했고 드디어 오늘 보고 왔다.

스토리 전개는 듣던 대로 특별한 것은 없었다.
자연과 소통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는 나비족에게 지구인들이 쳐들어와서 그들의 행성과 삶의 터를 빼앗으려고 하고
남녀 주인공은 사랑의 힘으로 그들과 맞서 싸워 결국에는 행성을 지켜내고야 만다는 그런 진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똑같은 내용을 어느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서 이야기는 재밌기도 하고 재미없기도 한데,
아바타는 똑같은 얘기를 너무나도 재밌는 그릇에 담아내었기에 사람들이 극찬이 끊이지 않는 것 같다.



<< 영화 제작과정 ↗ 이모션캡쳐 영상 ↖>>



처음엔 그저 에니메이션과 CG의 조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의 제작과정을 보고 나니 영화산업의
한단계를 진화한 획기적인 작품이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단순한 CG가 아니라 주인공의 모션을 캡쳐하기 위해 수만은 최첨단 장비들이 동원되었다. 모든 각도에서 배우들의 감정 하나하나와 모션 하나하나를 담기 위해 190여대의 HD카메라를 설치했다고 한다. 제작에 투입된 돈만 해도 8000억 ~ 1조 달러가 넘는다고 하니 과히 천문학적 숫자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995년에 벌써 이영화를 기획했지만 기술력과 자본력의 부족으로 시도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이루어내고야 만 영화라는 말을 들었을때 한 사람의 꿈과 집념이 이루어낸 결정체란 생각이 들었다.

3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과 3D안경때문에 불편했지만 오랫만에 재밌는 영화를 봐서 기분은 좋았다. 지겨운 3시간을 막내는 나름 잘 버텨주었다. 신세계센텀시티에서 약간의 장을 본 뒤 지하1층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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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스탠포트 대학교 졸업식 연설문

 
이 연설문은 스티브잡스가 2005년 미국의 명문대학인 스탠포트 대학교의 졸업식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근대 최고의 연설문 중 하나로 평가될 만큼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짧지만 강렬한 그의 메시지에 수 많은 사람들이 감동과 도전을 받았다.

지금 그 감동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연설문 전문>>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세계 명문대로 꼽히는 대학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오늘 이 자리만큼 대학졸업식을 가까이서 목격한 적은 없습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오늘은 제 인생에서 일어났던 세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그뿐입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딱 세가지 이야기입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들려 드릴 첫 번째 이야기는 점 잇기에 관한 것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리드 칼리지 Reed College에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자퇴를 했으나

일년 반 정도 청강생활을 하면서 머물렀습니다.


So why did I drop out?

그렇다면 왜 제가 자퇴를 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이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 갑니다. 생모는 당시 대학원을 다니던 미혼모였는데,

저를 양자로 보낼 결심을 하셨죠.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어머니께서는 제가 대졸학력을 가진 부부에게 입양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 마자 변호사 부부가 입양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런데 제가 태어나기 직전에 이 부부는 여자 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은 한밤중에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셨죠.

"예정에 없던 사내 아이가 태어났는데 받으시겠습니까?"

양부모님의 대답은 "물론입니다." 였습니다.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데 저를 낳아주신 어머님은 나중에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입양동의서에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양부모님께서 저를 꼭 대학에 보내시겠다고 약속을 한 지

몇 달이 지나서야 친 어머님은 마음이 누그러지셨죠.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로부터 17년 후에 대학에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순진하게도 스탠포드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택했습니다.

일반 근로자였던 양부모님이 저축한 모든 돈이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6개월 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제가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대학 교육이

어떤 도움이 될 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그리고 저는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을 까먹고 있었죠.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자퇴를 결심했고,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당시에는 꽤 두려웠지만, 돌아 보면,

제가 인생에서 내린 최고의 결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자퇴를 하고 나니, 관심 없었던 필수과목 대신 듣고 싶었던 강의를 청강할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낭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기숙사에 방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네 집 거실에서 잠을 잤고,

콜라 빈 병을 모아 재활용센터에 갖다 주고 병당 5센트를 받아서 먹을 것을 샀고,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은 양질의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 십 킬로미터를 걸어

하레 크리슈나 the Hare Krishna 사원(역주: 힌두교 계열)의 일요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I loved it.

그곳에서 식사는 정말로 좋았습니다.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제 호기심과 직감으로 얻는 대부분의 경험은 이후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재산이 되었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예를 한가지 들어 보지요: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그 당시 리드 칼리지에서는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교정 곳곳의 포스터, 서랍의 레이블 마다 아름다운 서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자퇴를 했으니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서체 수업을 듣기로 작정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세리프와 산 세리프 서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자모의 결합에 따라서

자간을 달리 둠으로써 훌륭한 서체를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것은 아름다웠고, 역사적으로 유명했으며, 과학은 따라 갈 수 없는 섬세한 예술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매료되었죠.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이것이 내 인생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될 것인가 하는 한 가닥 희망 조차 없었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하지만 십 년 후,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의미가 와 닿았습니다.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매킨토시와 접목을 시켰을 때, 미려한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탄생했으니까요.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제가 만약에 그때 서체 수업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매킨토시는 다중 서체나 비례적으로 자간을 조정하는 글꼴을 가지지도 못했을 겁니다.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그리고 윈도우즈가 맥을 그대로 따라 했으니까,

매킨토시뿐만 아니라 그 어떤 퍼스널 컴퓨터도 비슷한 처지에 놓였겠죠.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자퇴를 하지 않았더라면, 서체 수업을 청강하지 않았을 테니,

퍼스널 컴퓨터는 오늘날과 같은 훌륭한 인쇄술을 가지지도 못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었을 때에는 이런 미래의 점들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돌아 보았을 때, 모든 게 분명히 보였습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다시 말씀 드리지만, 우리는 미래의 점들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과거의 점들만 이을 수 있는 거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이런 점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 이어진다고 믿어야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운명), 그 무엇이건 간에 믿어야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제 인생관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대한 것입니다.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운 좋게도 저는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일찍 찾았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 나이 스무 살에 워즈 Woz와 같이 부모님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를 시작했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 안에 애플은 사천 명 이상의

직원을 가진 20억불 짜리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창사 이래 최고의 걸작품인 매킨토시를 전년도에 출시했고 그때 제 나이가 서른이었습니다.

 

And then I got fired.

그리고 저는 해고를 당했죠.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스스로 창업한 회사로부터 어떻게 해고를 당할 수 있느냐구요?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애플의 규모가 점점 커감에 따라 저와 함께 회사를 운영해 나갈 재능이

걸출하다고 생각한 사람을 영입했고, 한 해 정도는 잘 굴러 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러다가 회사의 장래에 관한 견해가 엇갈리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불화로 번졌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그런데 이때, 회사의 이사진들은 그 사람 편을 들었죠.

 

So at 30 I was out.

그래서 나이 서른에 쫓겨 났던 겁니다.

 

And very publicly out.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말입니다.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제 인생의 초점이 사라졌고, 그것은 크나큰 충격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몇 달 동안 무엇을 해야 좋을 지 앞이 깜깜했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제 쪽으로 오던 바톤을 놓친 것처럼 한 세대 전의 기업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빗 패커드(역주; 휴렛 패커드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역주; 인텔의 공동 창업자)를 만났고 볼쌍 사나운 제 실패에 대해 사과를 하려고 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아주 공공연한 실패작이라 차라리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을 칠까 하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그러나, 무엇인가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여전히 제가 하던 일을 사랑했습니다.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애플에서 있었던 사건은 그 사랑을 조금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축출당했지만, 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다짐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 당한 사건은 돌아 보면

제 인생에서 일어났던 최고의 사건으로 판명되었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성공이라는 무거움을 벗고, 확신은 전보다 줄었지만,

다시 처음 시작한다는 가벼움으로 임했습니다.

 

It freed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of my life.

해방된 기분을만끽하며 제 인생의 가장 창의적인 시기로접어 들게 되었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그로부터 5년간, NeXT, 그리고 Pixar를 창업했고, 제 아내가 될 멋진 여자와 사랑에 빠졌죠.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Toy Story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놀라운 반전으로 애플은 NeXT를 인수했고, 저는 애플로 돌아 왔고,

NeXT에 개발했던 기술은 현재 애플 르네상스의 핵심입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그리고 로렌스와 저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죠.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확신합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그것은 지독하게 입에 쓴 약이었지만, 그 환자는 그 약이 필요했나 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때로 삶은 당신의 머리를 벽돌로 칩니다.

 

Don't lose faith.

신념을 버리지 마세요.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제가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이유는 하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임을 이제 잘 알고 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듯이 일도 그런거죠.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자신이 하는 일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고,

진정한 만족을 얻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가 훌륭한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아직도 그것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 보세요.

 

Don't settle.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마세요.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가슴으로 알 수 있는 모든 일이 그렇듯, 일단 찾았으면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인지 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위대한 사랑처럼, 해를 거듭할 수록 점점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그러니, 그 일을 찾을 때까지 계속 탐색을 하십시오.

 

Don't settle.

현재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열 일곱 살 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마지막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옳은 길로 들어 설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이 말에 감명을 받은 저는 그로부터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이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요." 라는 대답이 계속 나온다면, 무엇인가를 변경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곧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야 말로

제가 인생의 중대 결정을 내릴 때 의지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왜냐하면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심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은 죽음의 면전에서 밑으로 가라 앉고,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곧 죽게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은 잃어버릴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당신은 이미 벌거벗은 상태입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일년 전쯤에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30반에 CT 촬영을 했는데, 췌장에 종양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전 췌장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이 암은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며, 길어야 석 달에서 여섯 달이라고 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에 가서 주변을 정돈하라고 했는데, 환자들에게 죽을 채비를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것은 자식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하리라 생각했던 이야기를 불과 몇 달 안에 다 하라는 것입니다.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그것은 매사를 잘 마무리해서 가족들이 받을 충격을 가능한 한 줄이라는 뜻입니다.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그것은 작별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온종일을 보냈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날 저녁,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목구멍으로 통해서 위장을 거쳐 장까지 내시경을 넣고,

췌장에 바늘을 꽂아서 종양에서 세포를 채취했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현미경으로 조직세포를 본 결과 아주 드문 췌장암의 한 종류로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드러나 의사들이 눈물을 글썽거렸다고 당시 곁에 있던 아내가 말했습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그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때만큼 죽음의 문전에 가까이 가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다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 일을 겪고 나니, 죽음 자체가 유용할 수 있지만 순전히 지적인 개념이었던 시절보다

좀 더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아무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하늘나라에 가고 싶은 사람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기를 원치는 않습니다.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하지만 죽음은 어느 누구나 도달하는 목적지입니다.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과도 같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지요.

 

It is Life's change agent.

죽음은 '삶'의 변화물질입니다.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옛 것을 치우고, 새것을 위한 공간을 만듭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 그 '새것'은 바로 여러분이지만, 언젠가 여러분도 '옛 것'이 되고, 치워지겠죠.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지나치게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면서 낭비를 해서는 안됩니다.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다른 이의 생각이 빚어낸 결과가 구속하는 삶, 즉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여러분 안의 목소리가 다른 이의 의견이 내는 소음에 익사 당하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And most important thing is to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 있게 당신의 가슴과 직감이 하는 말을 따르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이 두 가지는 어떤 식으로든 여러분이 진정 무엇이 되고자 하는 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그 이외의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입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렸을 때, '지구 백과'(The Whole Earth Catalog)라는

굉장한 책이 있었는데 우리 세대 바이블 중 하나였죠.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지금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맨로팍 Menlo Park에 살던

스튜엇 브랜드 Stewart Brand 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이 책에 자신만의 시적 영감을 불어 넣었죠.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1960년 후반이었는데 퍼스널 컴퓨터나 탁상 출판이 출현하기 전이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구글이 존재하기 35년 전에 있었던, 책으로 된 구글 같은 것이었죠.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엇과 그 팀은 전체 지구 목록의 몇 가지 증보판을 냈고, 수명을 다했을 무렵, 최종판을 출판했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1970년 중반이었고, 그때 저는 지금의 여러분 나이였습니다.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최종판 뒷 쪽 커버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모험심이 넘치는 청춘이라면 그 길에서 히치 하이킹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함께. 바보스러움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그것은 그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습니다. 늘 제 자신이 그러기를 소망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바보스러움과 함께.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이제 여러분은 새 출발을 위해 졸업을 하고, 저는 여러분께 똑같은 소망을 보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에 머물라 . 바보스러움에 머물라.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첨단 IT제품들로 만들어진 스티브잡스의 모자이크

  

스티브 잡스(Steve Jobs)
  - 1955.2.25.일생(54세), 미국 샌프란시스코
  - 부인과 4명의 자녀와 살고 있음.
  - 애플의 창업자, 최고경영자(CEO)
  - NeXT, PIXAR CEO 역임
  -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혁신제품으로 애플사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끌어올린 천재 기업가.
  - 2007,2009 포춘지 선정 최고의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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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의 한국상륙 도대체 어떤 문제들이 있을까? 몇 가지를 짚어보자.

IT업계 최고의 화두는 단연 아이폰이다. 

최근 모신문 기사에 이런 글이 났었다.
'애플은 아이폰을 870만대 팔아 4조원의 이익을 남겼고,
삼성은 핸드폰을 5,000만개 팔아 1조원의 이익을 남겼다.'
잘 만든 혁신 제품 하나가 기업의 이윤에 미치는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스티브잡스의 돌출된 행동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그의 추종자로 만들어버렸다.
아이폰으로 시작된 애플의 돌풍이 지난달 말 새롭게 출시된
애플의 태블릿 PC[각주:1]'아이패드'로 이어질지 궁금하다.


2010년 세계 IT시장을 겨냥해 발표한 애플의 야심작 '아이패드'
신제품 발표를 앞다투어 보도한 세계언론들의 반응을 보면 애플사의 현재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9.3인치 LED화면에 1kg도 되지 않는 무게, 와이파이(Wi-Fi)에 이은 3G기능까지... 각 언론들이 앞다투어 찬사를 보내기도 하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어쨌든 세기의 관심을 끌기에는 그 영향력이 실로 상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는 지인 중에서도 벌써 출시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으니...



그러나 정작 국내 정착을 위해서 뛰어넘어야 할 산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된다. 전문가들은 3월초에 시판되는 아이패드가 한국 시장에 맞게 변신해 들어온다고 해도 년내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있다.

아이패드의 한국상륙 도대체 어떤 문제들이 있을까? 몇 가지를 짚어보자.


첫째, MS 일색인 한국 시장에 맞추기 쉽지 않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라서 문화적 다양성이 부족한 나라다. 특히 IT부분은 그 상황이 더 한듯 하다. 한국은 MS의 운영체제인 윈도와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이 98%가 넘는 나라이다. 따라서 모든 인터넷 환경들이 MS 환경에 맞춰져 있어, 당장 인터넷 접속을 통한 인터넷 뱅킹, 온라인 쇼핑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자랑하는 전자정부 싸이트의 이용도 제한된다. 아이패드를 통한 전자책, 온라인 강좌 시청 등 학습용 단말기로의 기능은 충분하겠지만 MS의 엑티브X로 대표되는 인터넷 환경을 어떻게 뚤어야할지가 애플의 숙제가 될 것이다.

둘째, 아이패드는 아이폰과 마찬가지로 어도비사의 플래시를 채택하지 않았다.
플래시는 웹상에서의 게임, 동영상, 애니메이션을 재생하도록 도와주는 소프트웨어다. 이미 플래시게임 시장은 그 규모 또한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인텔의 PC환경에 최적화된 SW이기 때문에 모바일 기기에 적용할 경우 배터리 성능에 문제점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채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애플이 어도비의 플래시에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중이기 때문에 플래시를 의도적으로 배재시킨 거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셋째, 국내 통신사의 태도는 신중할 수 밖에 없다.
KT의 아이폰 도입으로 타격을 입은 SK와 삼성은 대항마인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을 앞다투어 도입, 출시할 예정이지만 3G 기능을 탑재한 아이패드의 도입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사를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아이패드의 중립적 기능(통신기기와 PC의 중간적 형태)이 과연 국내시장에서 수익창출을 할 수 있을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국내환경에 맞는 기술적 연동 부분이나 직원교육등에 필요한 시간적 여유가 필요함을 볼 때 통신기능을 완벽히 충족하는 환경으로는 당장에 도입이 힘들 듯 하다.

넷째, 아이패드를 출시하고 나서 애플의 주가가 오히려 하락했다.
아이폰에 비해 특별한 혁신적 기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이런 이유로 비추어보아 아이패드는 향후 IT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아이패드의 신제품 발표 이후 태블릿PC와 넷북, PMP, 전자사전등으로 대표되는 IT시장의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IT업계의 사활을 건 전쟁으로 발전할 만큼의 영향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폰의 핵심부품을 납품해 엄청난 수익을 낸 삼성이나 LG도 그저 부품조달업체로 만족하기에는 그 자존심에 입은 상처가 크다. 
컨셉트 기기의 대표주자인 코원과 아이리버등 및 국내업체들도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이패드의 국내 상륙에는 시간이 소요될 듯 하지만,
한국의 애플마니아들의 성원에 어떻게 애플이
어떻게 답할지는 당분간 두고 봐야 할 듯 하다.


  1. '태블릿PC' : 기기의 스크린을 손가락이나 펜으로 터치하는 방식으로 조작할 수 있는 휴대형PC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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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센텀시티 5층에 위치한 시네드쉐프( Cine De Chef)에 다녀왔다.

영화와 식사를 동시에 할수 있는 프리미엄 영화 레스토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잠시 시네드쉐프 센텀점을 들여다 보자.



5층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좌측에 로고가 부착된 유리 벽면을 볼 수 있다.


입구에 비치된 안내판에는 현재 상영영화들과 메뉴판이 설치되어 있다.

신세계 5층은 식당가도 아니고, 영화관도 아니기 때문에 위치가 썩 좋은 편은 아닌듯 하다.
 
게다가 외부에서 볼 때 이 곳의 정체가 뭔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발을 들여 놓기에는

여전히 문턱이 높은 듯 하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좌측에 보이는 대기실 및 휴게실..

생각보다 너무 력서리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저 쉽게 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다.




씨네드 쉐프 정문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전경과 안쪽에서 입구쪽을 바라본 전경.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좌측 상단에 대형 스크린이 펼쳐저 있다.

스크린을 통해서 영화에 관한 정보 및 이벤트를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창가쪽에는 12명정도 모임이 가능한 룸이 있다.

이곳에서 식사와 회의가 가능하며, 4층에 있는 실내 아이스 링크장에서 열리는 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샤롯데, CGV스타리움과 비슷한 프리미엄 영화관...

여기에는 A관, B관 2곳의 상영관이 있으며, 각 64석, 30석의 좌석이 비치되어 있다.

단체 대관도 가능하다고 한다.



                                                            A, B관 좌석 배치도


영화관으로 가는 통로에 비치된 와인잔 인테리어가 공간을 더욱 돗보이게 하고 있다.


대관과 관련된 음식가격은 아래표를 참조하면 된다.

식사만 하는 단일메뉴의 경우는 1만원부터 8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찾아오는 길은 아래 약도를 참조하면 된다(홈페이지 플래시파일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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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블로그를 하다 보면 처음엔 모르다가 점차적으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환경들이 맘에 들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잘 꾸며놓은 남의 블로그를 다녀온 후 더 초라해보이는 내 블로그를 보면서 여러가지 유혹에 빠지게 된다. 대부분의 블로거들이 가장 손쉽게 하는 방법은 스킨을 바꾸는 것...스킨만 바꿔도 훨씬 산뜻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스킨을 바꾸어도 변하지 않는 기본 글꼴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블로그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글꼴들은 익숙한 것들이라 한계가 있다. 따라서 금방 식상해진다.

포털에서 제공하는 블로그들은 대부분 글꼴이 제한돼 있어 자신이 원하는 글꼴로 변경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불편을 없애기 위해 설치형 블로그들(티스토리, 이글루스 등)을 사용하지만 HTML이란 장벽때문에 쉽게 포기하는 편이다. 

나 또한 이런 블로그가 익숙치 않기 때문에 여러번의 착오를 거쳐 실습하고 있는 중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초보 블로거들이여 함께 내 블로그의 글꼴을 변경해 보자.
그럼 시작~!!


  블로그 글꼴 변경하기!!

1. 관리모드에서 HTML/CSS 편집창으로 들어간다.

먼저 블로그 관리모드로 들어가 스킨을 클릭한 후 HTML/CSS 편집창으로 들어간다.
(글꼴만 바꾸면 되기에 용어에 대한 복잡한 설명은 생략토록 한다.)

그럼 아래와 같이 skin.html과 style.css라는 두가지 편집창이 보일 것이다.




2. "Ctrl+F"를 쳐서 검색창을 불러온다.

    Ctrl + F: 키보드의 컨트롤키'Ctrl'버튼과 키보드의 더하기 '+' 버튼을 동시에 누르는 것)

Ctrl+F를 눌러 검색창을 띠운다음 기본글꼴(여기서는 기본글꼴이 '맑은 고딕')을 치면 아래 그림과 같이
일치하는 곳을 찾아서 표시해 줄것이다. 




3. 엔터키로 다음 검색결과를 찾은 뒤, 원하는 글꼴 이름으로 대체하도록 한다.

이 때 주의할 점은 폰트는 반드시 "한글"명과 파일명"영문"을 동시에 적어야 한다.

예를 들면 "돋움"이면 폰트명도 "Dotum", "고딕"이면 파일명도 "Gothic"이라고 쳐 줘야 한다.

아래 그림은 스타일시트(style.css)에서 찾은 맑은고딕이다.(옆에 영문으로 "Malgun Gothic"라고 적혀 있다.






4. 변경한 뒤 미리보기를 통해 사전검사를 한 뒤 저장을 한다.


초보자가 저지르는 실수를 최대한 막아주기 위해 제작진이 특별히 배려한 '미리보기'기능은 매우 편리하다.

혹이나 HTML을 잘못 수정하여 자료가 뒤엉키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미리보기 기능을 제공하고, 미리보기를

통해 이상이 없을 경우에는 저장하도록 하는 작은 배려도 해 놓았다.



간단한 위의 방법대로 따라해 보면 아래 그림처럼 자신이 원하는 글꼴로 변경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의외로 HTML을 모른다 하더라도 결코 어렵거나 힘들지 않다. 다만 몇번의 삽질이 있을 뿐이지만 블로그가

한단계 업그레드 되기 위해서는 이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이상 초보블로거의 글꼴 변경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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